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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덟 살의 한 페이지 ―가족도 /성국희

내 여덟 살의 한 페이지 ―가족도 성국희 맘마 좀 잘 무라고 부로 카는 말인데도 삽짝만 보는 동생, 모가지가 질따랗다 엄마는 몬 오실 낀데, 젖이 돌아 아플 낀데 “추버라 고마 문 다짜, 아따 고집도 무시라 니 자꾸 울고 카마 온지넉에 곰지 온데이” 곰지는 맨날천날 왔다, 엄마는 몬 오는데 ―『경북문단』(2021, 하반기호)

대체 불가 /정채원

대체 불가 정채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사자가 20만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20만 가족이 누구는 아들을 잃었고 누구는 아버지를 잃었고 누구는 남편을 잃었고 누구는 연인을 잃었다는 것이다 대체 불가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그 사람을 잃은 것이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어느 쪽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인기 회복을 위해? 협상이 하루 늦어질 때마다 오늘은 또 몇 백 명이 전사할까? 저녁뉴스에 자막으로 흘러갈 뿐인 그 숫자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그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싸늘한 어깨를 안아보지도 못 한 채 뜬 눈을 감겨주지도 못한 채 세상 모든 곳에서 영영 지워야 하는 웃으면 덧니가 보이던 무용수 아들아 세 살배기 딸을 안고 놓지 못하던 아빠야 자원입대 5..

개미들의 천국 /현이령

개미들의 천국 현이령 아버지가 아침 일찍 공원 숲으로 간다. 노란 조끼를 입고서, 숲이 아닌 것들은 모두 줍는다. 나무와 나무 사이 아버지와 아버지 사이 쓰레기를 줍다가 잘못 건드린 개미집에서 후드득 쏟아져 나오는 아버지. 아버지는 아버지를 물고 개미는 개미를 물고 이끼처럼 들러붙어 저녁을 먹는 우리 집. 아버지의 집에는 아버지도 모르는 집들이 많아. 나는 개미처럼 더듬이가 자라고 발로 툭 치면 무너져 내리는 불안들. 바닥을 잘 더듬는 내력이 우리의 유전자에 있지만 나는 한낮에도 까만 개미가 무섭다. 땅바닥을 쳐다보다 땅이 되는 게 꿈인 아버지가 떵떵거리지 못하는 건 기우뚱한 어깨 때문. 개미는 개미에게 의지하고 의지는 의지에 기대고 아버지의 몸을 기어 다니는 수많은 개미 떼. 아버지는 밤마다 방을 쓸어..

고독사가 고독에게 /박소미

고독사가 고독에게 박소미 나는 자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태동을 알아채는 침묵 이전의 기억 밑으로 밑으로, 웅크리고 있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재생에 몰두한다 어느 애도가 부재를 지나 탯줄로 돌아올 때까지, 타자의 몸속을 오가는 이 반복은 고고학에 가깝다 생환의 뒷면은 그저 칠흑 덩어리일까 벽과 벽 사이 미세한 빗살로 존재할 것 같은 한숨이 어둠 안쪽 냉기를 만진다 사금파리 녹여 옹기 만들 듯 이 슬픔을 별자리로 완성케 하는 일, 아슴푸레 떨어지는 눈물도 통로가 될까 북녘으로 넘어가는 해거름이 창문 안으로 울컥, 쏟아져 내린다 살갗에 도착한 바람은 몇 만 년 전 말라버린 강의 퇴적, 불을 켜지 않아도 여기는 발굴되지 않는 유적이다 잊기 위해 다시, 죽은 자의 생애를 읊조려본다 그래 다시, 귀를 웅크리..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