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과 사진/수필 17

사주를 믿으시나요?

사주를 믿으시나요? 성종은 조선시대 9대 왕이었지요. 9대하니 굉장히 긴 것 같습니다만 태조이래 사람만 9명이 바뀌었다는 것이지 2대인 정종과 3대인 태종은 태조 이성계의 아들이었고 조카인 단종을 적소의 땅 영월 청렴포에 유배를 시키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조선시대 최대의 성군인 세종의 아들이지요. 그 밑에 예종, 성종은 세조의 아들이구요. 세조의 아버지는 세종, 세종의 할아버지가 태조니까 성종과 조선개국왕인 태조와는 핏줄로 따지면 5대밖에 되지 않지요. 세종은 6명의 부인에게서 18남 4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5대왕인 문종과 7대 왕이 된 세조는 같은 어머니인 소헌왕후를 어머니로 두었습니다. 세조는 아버지인 세종의 문의 피를 이어받지 않고 할아버지인 태종의 무인기질을 받고 태어났나요. 같은 어머니인 소헌..

생활의 길목에서 16―병원11

생활의 길목에서 16 ―병원11 침대에 무거운 몸을 맡긴 채 탈진해 누워있는 사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의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여자들은 저렇게도 힘이 드는데 남자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으니... 그런데도 여자들은 두 번 다시 애 안 낳는다고 해 놓고 시간이 지나면 망각해버리고 또 아기를 가지는 것을 보면 망각은 종족 보존을 위한 신의 배려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의료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시절에 태어난 그 옛날 우리네의 엄마들은 얼마나 많은 불안과 고통을 겪으며 우리들을 낳았을까. 결혼하고 아이를 키워 봐야 부모의 심정 안다더니 부모가 되었지만 얼마나 부모의 심경을 헤아려 보았을까. 행여 잠자는 데 방해가 될까 말 한마디 건네기도 조심스..

생활의 길목에서 15 입원 10

생활의 길목에서 15 입원 10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내가 없는 병실에서 한 시간은 더 기다린 것 같았다. 여덟 시에 수술실에 들어가 아홉 시 십 분에 아기가 태어났고 씻겨서 수술대기실로 데리고 나온 시간이 9시 25분, 그리고 간호사가 아무 말도 없이 급히 아기를 데리고 간 뒤 병실로 온 지금 또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고요 속에 정지한 것만 같은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아내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부분마취가 듣지 않으면 전신 마취를 해야 한다고 하더니, 만약 전신 마취를 했다면 아직 깨어나지 않아서 지금도 회복실에 있는지 아니면 수술 중 뭐가 잘못되어 다른 치료를 받고 있는지 어떻게 된 일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시계를 안 보고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초조한 마음에 나는 시계를 보고 ..

생활의 길목에서 14 ―병원9

생활의 길목에서 14 ―병원9 "저, 잠깐만, 잠깐만요..." 계속 따라가면서 조금만 찍을 거라고, 잠깐이면 된다고 기다려주라고 했더니 간호사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병 원복도를 따라 계속 달리기만 한다. " 안된다니까요, 지금 이 아기 급하단 말이에요" 아니 도대체 뭐가 급하단 말인가. 보호자가 대기하고 있는데 자초지종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막 달려가고만 있으니 나도 간호사를 따라 달릴 수밖에 없었다. 사정하듯이 애걸해도 간호사는 잠시도 틈도 주지 않고 아기침대를 놓칠세라 밀면서 더 빨리 달려가고 있었다. 몇 분 아니 일 분을 찍은 것도 아니고, 정말 몇 초를 찍다가 촬영 기회를 놓친 나는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 캠코더의 파워 스위치가가 켜져 있는 줄도 모르고 그대로 뛰고 있었다. 나중에 녹화..

생활의 길목에서 13 ―입원 8

생활의 길목에서 13 ―입원 8 아침 이른 시간이라 수술대기실 앞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동안 이야기 듣기로는 수술실에 들어가면 삼사십 분 기다리면 아기가 나오고 산모도 회복실로 갔다가 바로 입원실로 온다고 들었기에 몇십 분만 기다리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고 별다른 생각 없이 아기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한 시간이 지나도록 수술실 출입문은 열리지를 않았다. 의자도 없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그냥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주저앉아 있었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지 걱정이 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입원실에 두고 온 캠코더 생각이 자꾸만 올랐다. 세상을 처음 대하는 아가의 모습을 찍으려고 캠코더를 병실에 가져다 놓고도 막상 수술실 앞에는 가져오지를 못했다. 세상에 태어나는 ..

생활의 길목에서 12 ―입원 7

생활의 길목에서 12 ―입원 7 나는 컴퓨터도 좋아해서 제일 처음으로 XT 컴이 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286, 386, 486 펜티엄 원 투 쓰리 포까지 다 사보았지만 그 당시 내가 제일 가지고 싶은 물건은 바로 캠코더였다. 이 캠코더는 큰애가 태여 나고 커 가면서 한창 재롱을 부릴 때에 몇 번을 사려고 마음먹었다가 사지 못했었기 때문에 더 갖고 싶은 물건이었다. 그래서 셋째가 산달을 두 달을 남겨 두고 큰 마음먹고 거금 8십 5만원을 주고 샀는데 뷰파인더가 칼라로 되어 있는 8미리 아날로그 캠코더였다. 첫 째와 둘 째 때는 동영상을 찍을 수 없었기에 카메라를 사서 한 달에 필름 한 통씩 일 년 동안 12통의 사진을 찍어 주기는 했지만 딸애들은 유난히 재롱도 많이 피우고 깜직한 짓도 잘해서 동영상을 찍어..

생활의 길목에서 11 ―입원 6

생활의 길목에서 11 ―입원 6 그 때에 나는 아내를 병원에 입원시킨 것만으로 내 의무를 다한 것처럼 아내를 잊고 있었다. 아니 잊고 있었다기보다 생각 못하고 있었다. 병원을 믿고 있었고 입원만 하면은 병원에서 다 알아서 해 주는 걸로 알고 있었다. 아내는 보호자가 꼭 필요한 환자도 아니었다. 스스로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갈 수 있으며 답답하면 병원 복도를 산책?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는 아내를 환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묘한 이율배반적인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환자인 아내를 환자로 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몸 상태가 정상적이었고 단순히 아기를 낳으려고 병원에 입원했더라면 나는 아내를 환자로 보았을까.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일단 병원에 들어오면은 다 환자이지만 나는 산모인 아내를 환자로..

생활의 길목에서 10 ―입원 5

생활의 길목에서 10 ―입원 5 ―입원 5 그러면서도 불러오는 배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병원 생활의 지겨움이 더 아내를 지치게 하는지 무서워도 빨리 수술해서 병원을 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번 하기도 했고, 아내보다 훨씬 늦게 들어온 사람이 출산하고 퇴원을 한다며 짐을 챙기면 아내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나는 언제나 퇴원 하나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내는 작은 병에도 아픔을 잘 참지 못하고 엄살을 잘 부리는 나에 비해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아내는 첫 아이를 낳을 때도 얼마나 조용했는지 나는 아기 낳는 일이 그렇게 큰일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첫 아이를 낳을 때였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야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정비례..

생활의 길목에서 9 ―입원 4

생활의 길목에서 9 입원 4 무엇 때문인지 영문을 몰라 쳐다만 보고 있자 이번에는 나직한 목소리로 다시 부른다. "잠깐만 이리 들어와 봐" 병실 앞 의자에 앉아 있는 나에게 아내가 여자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라는 소리였다. 밤이 깊어서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여자 화장실이라 다시 머뭇거리자 재차 아내가 들어오라고 한다. 화장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으로 세면대가 있는데 아내는 그쪽으로 가더니 가까이 다가오라고 한다. 그리고 뭔가를 작심한 듯 입고 있는 병원복의 상의를 걷어 올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아내가 무엇 때문에 그곳으로 나를 오라고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어서 새삼스레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십여 년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익을 대로 익은 얼굴이라 새삼스레 다..

생활의 길목에서 8 ―입원 3

생활의 길목에서 8 ―입원 3 나는 그 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그냥 의무적으로 애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다른 날과 다른 것이 있다면 병원에 올 때 피자를 한 판 사오라는 아내의 전화가 있었기에 피자가 배달되자 바로 병원을 향해 출발하였다. 의아한 것은 피자가 아내의 입맛에 맞지 않고 잘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아마 가지고 간 피자 역시 지난번에 사간 치킨이나 다른 음식처럼 아내는 입만 대고 아이들과 내 차지가 될 것이다. 아내는 피자 같은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나오는 식사도 잘 먹지 못했다. 밥도 반찬도 모두가 백색이었다. 임신중독증에 맞춰 나오는 병원 밥은 고춧가루는 넣지도 않고 음식은 하나같이 다 싱겁게 나와서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먹으면 토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