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읽기 -귀 /콕토 -소라 /조병화 귀 콕토 내 귀는 소라 껍질 바다 소리 그리워라. -김희보 편저『世界의 名詩』(종로서적, 1987) ------------------------ 소라 조병화 바다엔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허무한 희망에 몹시도 쓸쓸해지면 소라는 슬며시 물속이 그립답니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소라의 꿈도 바닷물에 굳어간답니다. 큰 바다 기슭엔 온종일 소라 저만이 외롭답니다.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남의 글 -좋은 시 문학상 건강 여행 뉴스 신문 기사 글 2024.03.19
의자 /조병화 의자 조병화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제 13시집《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1964) 수록 -시선집 『한국의 명시』김희보 엮음 남의 글 -좋은 시 문학상 건강 여행 뉴스 신문 기사 글 2024.03.19
불멸의 새가 울다 /진란 불멸의 새가 울다 진란 언어의 새들이 붉은 심장 속에 둥지를 틀다 관념의 깃털을 뽑아 깔고 그 위에 씨알을 품었다 쓸쓸한 귀를 열고 이름 없는 시인의 가슴으로 들어간 밤 어지러운 선잠에 들려올려지는 새벽, 어디선가는 푸른 환청이 들렸다 꽃-피-요 꽃-피요 -시집『혼자 노는 숲』(나무아래서, 2011) ------------------------- 시집을 낼 때 첫 장에 놓일 머리 시에 고민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서점에 가서 책을 살 때도 소설도 첫 장 첫 문단이 흥미가 있어야 뒤를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시 역시 첫 장에 있는 시를 보고 살까 말까 결정이 이루어질 때가 많지요. 평론가들이나 시인들도 시집을 받으면 일단 첫 머리의 시를 읽어 본다고 합니다. 좋으면 그래, 하고 한 장 더.. 나의 글과 사진/시 읽기 2024.03.19
윙크 /권혁웅 윙크 권혁웅 눈꺼풀은 몸이 우리에게 선물한 이불이죠 그것도 두 장이나 그가 이불 한 장을 뺏어 갔어요 오늘 밤 나는 편히 자기는 틀렸어요 - 시집 『세계문학전집』 (타이피스트, 2024) 남의 글 -좋은 시 문학상 건강 여행 뉴스 신문 기사 글 2024.03.19
동물의 왕국 ―동물계 소파과 의자속 남자 사람 /권혁웅 동물의 왕국 ―동물계 소파과 의자속 남자 사람 권혁웅 소가 트림의 왕이자 이산화탄소 발생기라면 이 동물은 방귀의 왕이자 암모니아 발생기입니다 넓은 거실에 서식하면서 소파로 위장하고 있죠 중추신경은 리모컨을 거쳐 TV에 가늘게 이어져 있습니다 배꼽에 땅콩을 모아 두고 하나씩 까먹는 습성이 있는데 이렇게 위장하고 있다가 늦은 밤이 되면 진짜 먹잇감을 찾아 나섭니다 치맥이라고, 조류의 일종입니다 이 동물의 눈은 카멜레온처럼 서로 다른 곳을 볼 수 있죠 지금 프로야구와 프리미어리그를 번갈아 보며 유생 때 활발했던 손동작, 발동작을 회상하는 중입니다 본래 네발 동물이었으나 지금은 퇴화했거든요 이 때문에 새끼를 돌보는 건 흔히 어미의 몫이죠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큰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급격한 호르몬 변화 때문인.. 남의 글 -좋은 시 문학상 건강 여행 뉴스 신문 기사 글 2024.03.19
아버지의 신념 /박용숙 아버지의 신념 박용숙 이빨 빠진 도장 한 번에 논배미는 영문도 모른 채 다른 주인 섬겼다 오라비 학자금 마련에 새벽 댓바람 고무신 종종걸음 대문 높은 집에 염치없는 손 내밀지 않았을 터 그 땅만 있었어도, 그 땅만 있었어도 귀 에는 바람 어머니 속 울어댔다 애써 외면했지만 아버지의 시선, 닷 마지기 논에 머물고 경칩 무렵 잠에서 깬 눈치 없는 개구리 아버지 속 시끄럽게 긁어댔다 읍내 농협에서 날아온 빚보증 독촉장에 아버지와 대작하던 고추장 바른 멸치가 더 붉게 울상짓던 날 사람이 먼저지 그까짓 땅이 대수냐 하시던 아버지 가슴도, 비워진 술잔도 지난해 가뭄처럼 쩍쩍 갈라진 논바닥 되어 갔다 논배미 고무신 발자국마저 한낮의 장대비에 슬그머니 자취 감추어 버렸다. ㅡ웹진 《시인광장》(2024, 3월호) 남의 글 -좋은 시 문학상 건강 여행 뉴스 신문 기사 글 2024.03.19
세상에 숨길 수 없는 것 / 공광규, 디카시 세상에 숨길 수 없는 것 화단에 몰래 묻어두었던 심장 두 개 올 여름 튤립으로 솟아났다오 세상에 숨길 수 없는 한 가지 우리 사랑 세 편의 디카시 창작과정 사례 공광규 1. 「몸뻬바지 무늬」와 「수련잎 초등학생」 나의 졸작, 제1회 디카시 작품상을 받은 「몸뻬바지 무늬」는 남산 예장동에서 회의를 하고 충무로로 점심을 먹으러 내려오다가 국화분에 가득 담긴 소국을 발견하고, 꽃의 크기가 비슷하게 어떤 질서를 이루고 있는 듯해서, 스마트폰으로 위에서 정면으로 내려찍은 뒤 문자를 붙인 것이다. 사진과 문자 내용은 인터넷 연관검색을 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편의 졸작, 2019년 6월 고2 전국연합학력평가에 문제지 지문으로 출제되어 디카시를 고등학교에 확.. 남의 글 -좋은 시 문학상 건강 여행 뉴스 신문 기사 글 2024.03.19
봄은 /이대흠 봄은 이대흠 조용한 오후다 무슨 큰 일이 닥칠 것 같다 나무의 가지들 세상곳곳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숨쉬지 말라. 그대 언 영혼을 향해 언제 방아쇠가 당겨질 지 알 수 없다. 마침내 곳곳에서 탕,탕,탕,탕 세상을 향해 쏘아대는 저 꽃들 피할 새도 없이 하늘과 땅에 저 꽃들 전쟁은 시작되었다 전쟁이다. -시집『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창비, 1997) 남의 글 -좋은 시 문학상 건강 여행 뉴스 신문 기사 글 2024.03.19
―역사문화탐방 모임 제9차 남해 여행 공지― ―역사문화탐방 모임 제9차 남해 여행 공지― 2024년 3월 23일 제9차 남해 여행을 안내하고 초대합니다. 안녕하십니까. 회원 여러분. 새해가 바뀌고 봄이 다가왔습니다. 새해 처음 가는 여행이라 마음이 더 설렙니다. 남쪽은 이미 산수유, 벚꽃 소식이 들려오고 있더군요. 새해 들어 역사문화탐방 모임의 회장님도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제1대 최종원 회장님께서 일신상의 사유로 그만두게 되시었고 후임으로 경영순 부회장님이 제2대 회장으로 오셨습니다. 최종원 회장님 수고 하시었고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새로 오신 경영순 회장님께서 우리 역사문화탐방 여행 모임을 잘 이끌어주시라고 믿습니다. 역사문화탐방 여행 모임 좌석 배정은 빠지지 않고 꾸준히 오시는 기존 고정 회원님과 전 달에 오신 회원님.. 나의 글과 사진/역사문화탐방 모임 2024.03.15
통증 /고영민 통증 고영민 중국에는 편지를 천천히 전해주는 느림보 우체국이 있다지요 보내는 사람이 편지 도착 날짜를 정할 수 있다지요 한 달 혹은 일 년, 아니면 몇 십 년 뒤일 수도 있다지요 당신에게 편지 한 통 보냅니다 도착 날짜는 그저 먼 훗날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길 원합니다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는 걸 오랫동안 지켜보길 원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수십 번, 수백 번의 후회가 나에게 왔다가고 어느 날 당신은 내가 쓴 편지 한 통을 받겠지요 겉봉을 뜯고 접은 편지지를 꺼내 펼쳐 읽겠지요 그때 나는 지워진 어깨 너머 당신 뒤에 노을처럼 서서 함께 편지를 읽겠습니다 편지가 걸어간 그 느린 걸음으로 내내 당신에게 걸어가 당신이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한 홉 한 홉 차올랐던 숨을 몰아 내쉬며 .. 나의 글과 사진/시 읽기 2024.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