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신념
박용숙
이빨 빠진 도장 한 번에
논배미는
영문도 모른 채 다른 주인 섬겼다
오라비 학자금 마련에
새벽 댓바람 고무신 종종걸음
대문 높은 집에 염치없는 손 내밀지 않았을 터
그 땅만 있었어도, 그 땅만 있었어도
귀 에는 바람 어머니 속 울어댔다
애써 외면했지만
아버지의 시선, 닷 마지기 논에 머물고
경칩 무렵 잠에서 깬 눈치 없는 개구리
아버지 속 시끄럽게 긁어댔다
읍내 농협에서 날아온 빚보증 독촉장에
아버지와 대작하던 고추장 바른 멸치가
더 붉게 울상짓던 날
사람이 먼저지 그까짓 땅이 대수냐 하시던
아버지 가슴도, 비워진 술잔도
지난해 가뭄처럼 쩍쩍 갈라진 논바닥 되어 갔다
논배미 고무신 발자국마저 한낮의 장대비에
슬그머니 자취 감추어 버렸다.
ㅡ웹진 《시인광장》(2024,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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