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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국―아내에게 /최영철

쑥국 ―아내에게 최영철 참 염치없는 소망이지만 다음 생애 딱 한번만이라도 그대 다시 만나 온갖 감언이설로 내가 그대의 아내였으면 합니다 그대 입맛에 맞게 간을 하고 그대 기쁘도록 분을 바르고 그대 자꾸 술 마시고 엇나갈 때마다 쌍심지 켜고 바가지도 긁었음 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지금의 그대처럼 사랑한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고맙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아이 둘 온 기력을 뺏어 달아난 쭈글쭈글한 배를 안고 골목 저편 오는 식솔들을 기다리며 더운 쑥국을 끓였으면 합니다 끓는 물 넘쳐 흘러 내가 그대의 쓰린 속 어루만지는 쑥국이었으면 합니다 ―시집『찔러본다』(문학과지성사, 2010) ========================================================================..

돌탑 /고미숙

돌탑 고미숙 누구의 소원일까 차곡차곡 쌓여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돌은 불안한 소원이 되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돌은 소원을 받쳐주는 소원이 되어 탑을 이루고 있다 소원이 깃들어 있지 않는 돌도 한 개 끼어 있다 돌의 마음이 무거울까봐 아무런 소원 없이 내가 올려놓은 납작 돌 한 개 ―월간『월간문학』(2005년 11월호) 옛날에는 마을마다 뒷산에는 산신당이나 성황당이 있고 마을 입구에는 장승이나 솟대, 돌탑을 세워 신앙의 대상물로 삼으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었다. 그러나 그런 전통마을은 민속촌에나 있고 얼마 남아 있지 않지만 민간신앙의 대상물인 돌탑은 어디를 가도 쉽게 만날 수가 있다. 장방형으로 또는 삼각형으로 제대로 쌓은 돌탑도 많지만 왠지 나는 정갈하게 차곡차곡 잘 쌓아놓은 돌탑보다 사람들..

연타불을 갈며 /홍신선

연탄불을 갈며 홍신선 컨테이너 간이함바집 뒤 공터에서 연소 막 끝난 헌 연탄재 치석 떼듯 떼어버리고 윗 것 밑으로 내려놓고 십구공탄 새 것을 그 위에 올려놓는다 하나하나 생식기 맞춰 넣고 아궁이 불문 열어두면 머지않아 자웅이체가 서로 받아주고 스며들어 한통속으로 엉겨 붙듯 연탄 두 장 골격으로 활활 타오르리라 둥근 몸피 속속들이 푸른 불길 기어 나와 단세포 목숨처럼 탄구멍마다 솟구치리라 꿈틀대리라 왜 통합이고 통일인가 연탄불 신새벽녘 갈아보면 모처럼 너희도 안다 후끈후끈 단 무솥 안에서 더 요란스럽게 끓어 넘치는 뭇 사설의 뒷모습들. ―계간 『미네르바』(2008년 봄호) 연탄불 갈아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십대는 연탄이 뭔지도 모르고 20대는 보기만 했을 것이고 삼십대는 한번쯤 갈아보았을까요. 사십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