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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의 선택―선녀의 선택-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 을 고쳐쓰다 /유안진

선녀의 선택 ―선녀의 선택-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 을 고쳐쓰다 유안진 그지없이 순박하다고 믿었던 남편이 날개옷을 내놓자 기가 막혔지요. 이런 거짓으로도 일심동체 부부였다니요? 내 남편이 목욕하는 선녀들을 훔쳐 본 치한癡漢이었다니요? 겉잡을 수 없는 경멸감과 배신감에, 주저 없이 날개옷을 떨쳐입고 두 아이를 안고 날개 쳐 올랐지요. 티끌만치도 미안하긴 커녕 다만 억울하고 분할뿐이었지요. 오오 그리운 내 고향! 가슴도 머리도 쿵쾅거렸지요. 큰애가 아빤 왜 안 오느냐고 하자, 비로소 정신이 났지요. 얘들이 제 아빠를 그리워한다면? 부모-자식간의 천륜天倫을 갈라놓을 권리가 내게 있는가? 아쉬우면 취하고, 소용없어지면 버려도 되는 게 남편이란 존잰가? 우리 셋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까? 옥황상제님도 잘했다고 하..

강이 날아오른다 /손택수

강이 날아오른다 손택수 강이 휘어진다 乙, 乙, 乙 강이 휘어지는 아픔으로 등 굽 은 아낙 하나 아기를 업고 밭을 맨다 호밋날 끝에 돌 부딪는 소리, 강이 들을 껴안는다 한 굽 이 두 굽이 살이 패는 아픔으로 저문 들을 품는다 乙, 乙, 乙 물새떼가 강을 들어올린다 천마리 만마리 천 리 만리 소쿠라지는 울음소리- 까딱하면, 저 속으로 첨벙 뛰어들겠다 -시선집『반경환 명시감상 1, 2』(종려나무, 2008)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 풍경속에 들면 고단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는 것과 체험하는 것의 차이겠지요. 용솟음치는 물을 바라보노라면 어지럼증을 일으키며 마악 뛰어들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강이 휘어지는 아픔과 강을 들어올리는 물새떼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놓은 문자와 아기를 업고 밭은 매는 등 굽은 아낙의 힘..

그리운 연어 /박이화

그리운 연어 박이화 고백컨대 내 한 번의 절정을 위해 밤새도록 지느러미 휘도록 헤엄쳐 오던 그리하여 온 밤의 어둠이 강물처럼 출렁이며 비릿해질 때까지 마침내 내 몸이 수초처럼 흐느적거릴 때까지 기꺼이 射精을 미루며, 아끼며, 참아주던 그 아름답고도 슬픈 어족 그가 바로 지난날 내 생에 그토록 찬란한 슬픔을 산란하고 떠나간 내 마지막 추억의 은빛 연어이지요 -시선집『반경환 명시감상 1, 2』(종려나무, 2008) 마광수의 시 「회춘」 끝 부분.... "내가 너의 팬티가 되고 브래지어가 되어 하루종일/네 살갗에 붙어 있고 싶다/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주기 바란다"........에로티즘을 직접적으로 넣어 은근한 맛은 없는데 간절한 마음을 당당하게 호소력 있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에 에로티즘이 은..

각축 /문인수

각축 문인수 어미와 새끼 염소 세 마리가 장날 나왔습니다. 따로 따로 팔려갈지도 모를 일이지요. 젖을 뗀 것 같은 어미는 말뚝에 묶여 있고 새까맣게 어린 새끼들은 아직 어미 반경 안에서만 놉니다. 2월, 상사화 잎싹만 한 뿔을 맞대며 톡, 탁, 골 때리며 풀 리그로 끊임없는 티격태격입니다. 저러면 참, 나중 나중에라도 서로 잘 알아볼 수 있겠네요. 지금, 세밀하고도 야무진 각인 중에 있습니다. ―시집 『쉬!』(문학동네, 2006) ―시선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2』(국립공원, 2007) ===================================================================================================== 어릴 때 형제간의 토닥토닥 ..

쟁반탑 /복효근

쟁반탑 복효근 탑이 춤추듯 걸어가네 5층탑이네 좁은 시장 골목을 배달 나가는 김씨 아줌마 머리에 얹혀 쟁반이 탑을 이루었네 아슬아슬 무너질 듯 양은 쟁반 옥개석 아래 사리합 같은 스텐 그릇엔 하얀 밥알이 사리로 담겨서 저 아니 석가탑이겠는가 다보탑이겠는가 한 층씩 헐어서 밥을 먹으면 밥먹은 시장 사람들 부처만 같아서 싸는 똥도 향그런 탑만 같겠네 ㅡ시집『목련꽃 브라자』(천년의시작, 2005) 한동안 티브에서 '생활의 달인' 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 했었다. 손놀림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지 마치 자동화된 기계를 보는 것 같았다. 단순해 보이지만 생업으로 한가지 일을 오래 반복하다보니 숙련이 되었다고는 하나 솜씨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렇다고해서 아무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은 그 일을 타고났다고..

생활의 길목에서 16―병원11

생활의 길목에서 16 ―병원11 침대에 무거운 몸을 맡긴 채 탈진해 누워있는 사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의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여자들은 저렇게도 힘이 드는데 남자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으니... 그런데도 여자들은 두 번 다시 애 안 낳는다고 해 놓고 시간이 지나면 망각해버리고 또 아기를 가지는 것을 보면 망각은 종족 보존을 위한 신의 배려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의료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시절에 태어난 그 옛날 우리네의 엄마들은 얼마나 많은 불안과 고통을 겪으며 우리들을 낳았을까. 결혼하고 아이를 키워 봐야 부모의 심정 안다더니 부모가 되었지만 얼마나 부모의 심경을 헤아려 보았을까. 행여 잠자는 데 방해가 될까 말 한마디 건네기도 조심스..

생활의 길목에서 15 입원 10

생활의 길목에서 15 입원 10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내가 없는 병실에서 한 시간은 더 기다린 것 같았다. 여덟 시에 수술실에 들어가 아홉 시 십 분에 아기가 태어났고 씻겨서 수술대기실로 데리고 나온 시간이 9시 25분, 그리고 간호사가 아무 말도 없이 급히 아기를 데리고 간 뒤 병실로 온 지금 또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고요 속에 정지한 것만 같은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아내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부분마취가 듣지 않으면 전신 마취를 해야 한다고 하더니, 만약 전신 마취를 했다면 아직 깨어나지 않아서 지금도 회복실에 있는지 아니면 수술 중 뭐가 잘못되어 다른 치료를 받고 있는지 어떻게 된 일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시계를 안 보고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초조한 마음에 나는 시계를 보고 ..

생활의 길목에서 14 ―병원9

생활의 길목에서 14 ―병원9 "저, 잠깐만, 잠깐만요..." 계속 따라가면서 조금만 찍을 거라고, 잠깐이면 된다고 기다려주라고 했더니 간호사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병 원복도를 따라 계속 달리기만 한다. " 안된다니까요, 지금 이 아기 급하단 말이에요" 아니 도대체 뭐가 급하단 말인가. 보호자가 대기하고 있는데 자초지종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막 달려가고만 있으니 나도 간호사를 따라 달릴 수밖에 없었다. 사정하듯이 애걸해도 간호사는 잠시도 틈도 주지 않고 아기침대를 놓칠세라 밀면서 더 빨리 달려가고 있었다. 몇 분 아니 일 분을 찍은 것도 아니고, 정말 몇 초를 찍다가 촬영 기회를 놓친 나는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 캠코더의 파워 스위치가가 켜져 있는 줄도 모르고 그대로 뛰고 있었다. 나중에 녹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