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길목에서 14
―병원9
"저, 잠깐만, 잠깐만요..."
계속 따라가면서 조금만 찍을 거라고, 잠깐이면 된다고 기다려주라고 했더니 간호사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병 원복도를 따라 계속 달리기만 한다.
" 안된다니까요, 지금 이 아기 급하단 말이에요"
아니 도대체 뭐가 급하단 말인가.
보호자가 대기하고 있는데 자초지종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막 달려가고만 있으니 나도 간호사를 따라 달릴 수밖에 없었다. 사정하듯이 애걸해도 간호사는 잠시도 틈도 주지 않고 아기침대를 놓칠세라 밀면서 더 빨리 달려가고 있었다. 몇 분 아니 일 분을 찍은 것도 아니고, 정말 몇 초를 찍다가 촬영 기회를 놓친 나는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 캠코더의 파워 스위치가가 켜져 있는 줄도 모르고 그대로 뛰고 있었다. 나중에 녹화한 것을 되감아서 보았더니 나의 다급하고 사정하는 말소리와 함께 렌즈는 땅바닥을 향해서 어지럽게 흔들리며 찍혀 있었다.
나는 아기를 놓칠세라 바닥이 찍히는 줄도 모르고 계속 같이 덩달아 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외치고 있었다. "잠깐만 찍을께요, 잠깐만......" 그러나 간호사는 내 말을 들은 체도 아니하고 앞만 보고 계속 달리기만 하였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잠깐만 멈춰달라고 하면서 뒤를 따라 뛰고 있었다.
"쪼금만 찍을께요, 쪼끔만."
수술실 입구에서 신생아 병실이 있는 곳까지 백여 미터를 달려가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사정하였고 스물 서넛 돼 보이는 간호사는 곧바로 앞으로 계속 달리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신생아입원실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는가 싶더니 이내 문을 열리고 아기를 유모차를 먼저 안으로 밀어 넣더니 한마디 말도 없고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는 안으로 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당시 나는 그 간호사가 왜 아기를 데리고 그리 급히 뛰어가는지도 모르고 있었고 조금밖에 못 찍은 비디오를 조금 더 찍고 싶어서 따라간 것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약간 이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열심히 기세 좋게 뒤따라가던 내 코앞에서 문이 쾅 하고 닫히고 나니까
갑자기 무엇을 놓쳐버린 것처럼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고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멍해져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뒤따르는 나에게 누구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아무런 일언반구의 설명도 없이 신생아실로 아기를 데리고 들어가더니 아무런 소식도 없다. 신생아실의 간호사는 자기의 임무를 다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간호사가 왜 아기를 데리고 그리 급히 뛰어갔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누구냐고 물어보지도 않았고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그러나 아기가 어디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해 보지도 않았고 단지 촬영 기회를 놓친 것이 기분이 나쁘고 다시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없기에 속이 상했는데 그나마 몇 초 동안이라도 찍을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위에 올린 사진은 8 미리 캠코더에 찍어 놓은 것을 영상 보드로 컴퓨터에 저장하면서 캡쳐한 사진이다.
사진은 수도 없이 많이 찍었지만 태어난 지 15분 만에 찍은 장면이 불과 몇 초밖에 되지를 않아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잡은 사진이기에 나에게는 귀중한 사진이다. 그동안 다른 아기들은 수술대기실 앞에서 보호자뿐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잠시 볼 수 있도록 몇 분 동안 공개를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내 아기도 몇 분 정도의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캠코더를 집에서 병원으로 올 때 준비해 왔고 잘 찍어 나중에 아들이 크면 보여주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안 된다고 하면서 급하게 데려갔으니 뭔가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 이유도 영문도 알 수가 없었다. 무조건 이 아기 급하다는 말 한마디만 남긴 채 그대로 아기를 데리고 가버렸기 때문에 이래저래 심기가 불편하였다.
그러나 병원에서 하는 일이라 항의하기도 그렇고 또 물어보려고 해도 무엇을 어떻게 물어 아야 하는지 마땅히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유모차 바구니 속의 아기는 눈도 뜨고 있었고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잠 때문에 아무 생각도 안 나는지 알 수 없었다. 수수 전날 밤 내일 아침에 첫 번째로 수술하려 들어가는 아내 때문에 근육이 긴장도 되어 있는 데다 새벽에 양수까지 터지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자지를 못했다.
마음이 복잡해지니까 더더욱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어딜 가서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정말 바보가 된 것 같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리가 혼란스러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데 그제서야 문득 아내 생각이 떠올랐다. 불과 몇 분 전에 몇 분 동안 일어난 일인데도 마치 몇 년 전의 있었던 일인 것처럼 모든 것이 아련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 생각이 왜 이제야 떠오른 것일까. 아내는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 병실로 와 있는 것은 아닐까. 수술이 끝나면 회복실에 30분이나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병실로 온다고 했는데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나 하면서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겨서 아내가 입원하고 있던 병실로 돌아왔다.
역시 아내는 아직 오지를 않고 있었다. 빈 침대와 아내가 항상 누워있었던 침대 머리맡에는 금속성의 차가운 빛을 발하는 산소통으로 시선이 들어왔다. 시간으로 봐서는 아마 지금쯤 회복실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머리는 뭐가 뭔지 정리가 되지 않아서 애먼 시계만 자꾸 쳐다보고 있었다.
아기는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급하게 데려갔는지...아기는 세상 밖으로 잘 나왔는데 아내는 수술을 무사히 끝났는지... 지금 같으면 병원 어디에라도 물어봤을 것 같은데 그때는 물어볼 생각도 못 했고 생각이 멈춰있는 것처럼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였다. 조금 기다리면 아내가 돌아올 거라 생각하면서 병실 창밖을 내다보며 아내가 병실로 들어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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