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대상포진 박숙경 압축된 잠복기가 풀리면서 꽃의 비명이 바람에 실려 왔다 저, 출처 불분명의 레드카드 낯선 내가 뾰족이 돋았다 자정 부근에서야 어둠의 모서리에 오른쪽의 통증을 앉힌다 낡은 자명종 소리가 명쾌하게 번지면 조각난 봄의 퍼즐이 방안 가득 흩어지고 나는 다시, 나를 앓는다 칼날 같이 깊은 밤 공복의 위장이 허기를 바깥으로 출력하면 소원은 자주 초라해지고 미완의 날개는 천칭자리와 사수자리 사이쯤에 엉거주춤, 지독한 사랑은 오른쪽 등에서 태어나 겨드랑이를 가로질러 명치끝에서 머문다 ㅡ시집『그 세계의 말은 다정하기도 해서』(시인동네, 2021) 대상포진의 초기 증상은 감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두통이 오고 몸살 난 것처럼 팔, 다리가 나른하고 쑤신다고 한다. 건강할 때는 숨어 있다가 피로가 쌓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