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길목에서 12
―입원 7
나는 컴퓨터도 좋아해서 제일 처음으로 XT 컴이 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286, 386, 486 펜티엄 원 투 쓰리 포까지 다 사보았지만 그 당시 내가 제일 가지고 싶은 물건은 바로 캠코더였다. 이 캠코더는 큰애가 태여 나고 커 가면서 한창 재롱을 부릴 때에 몇 번을 사려고 마음먹었다가 사지 못했었기 때문에 더 갖고 싶은 물건이었다. 그래서 셋째가 산달을 두 달을 남겨 두고 큰 마음먹고 거금 8십 5만원을 주고 샀는데 뷰파인더가 칼라로 되어 있는 8미리 아날로그 캠코더였다.
첫 째와 둘 째 때는 동영상을 찍을 수 없었기에 카메라를 사서 한 달에 필름 한 통씩 일 년 동안 12통의 사진을 찍어 주기는 했지만 딸애들은 유난히 재롱도 많이 피우고 깜직한 짓도 잘해서 동영상을 찍어 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항상 남아 있었다. 그 아쉬움이 셋 째를 가진 것을 빌미로 해서 이 번에는 눈 딱 감고 사버렸다. 그리고 이 번 만큼은 아이가 이 세상에 바로 나온 첫 모습을 캠코더에 꼭 담으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내가 삼 바라지하러 가면서 이 캠코더를 챙긴 것은 아가의 첫 모습을 캠코더에 담고 싶어서였다.
그 동안 아내 때문에 병원에 다니면서 병원 여기 저기를 돌아 다녀 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수술실 앞 풍경은 다른 곳하고는 달리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시선이 가는 장소였었다. 우리 둘째도 여기로 들어가서 세상에 나왔고 얼마 안 있으면 아내는 또 이곳으로 들어가서 셋째를 수술해야 하기 때문에 이 곳에만 오면은 약간의 긴장감이 돌곤 하였다. 아내를 면회 갔다가 약간의 시간이 있으면 수술실 앞 대기실로 가 보기도 하는데 그 날도 다른 날처럼 사람들이 여럿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신생아가 처음 나오는 출입문이기도 하지만 중환자들이 수술실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해서 환자 가족들이 모여서 초조하게 바라보며 기다리는 곳이기도 했다.
오후 시간이었는데 수술문이 열리더니 한 노인이 수술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노인은 힘없이 눈을 감고 있었고 마른 몸집에 머리가 약간 벗겨져 있었다. 나이도 칠 십은 되어 보였고 의식도 없어 보이는데 사 오십은 되어 보이는 딸인 듯 싶은 한 여인이 수술실로 들어가는 사람을 향해서 크게 약간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크게 아버지를 부르고 있었다.
“ 아버지 힘내세요. 저희들이 여기서 기다릴께요......”
그러나 정작 수술실로 들어가는 그 노인은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를 않았다. 우중충하고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수술실 대기실 앞에는 수심에 찬 가족이나 친지들이 모두 긴 침묵에 빠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 대기실이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는 곳이 아니었다. 굳게 닫혀 있던 수술실 문이 열리면서 신생아가 베이비 침대를 타고 나오면은 갑자기 수술실 앞은 잠시 동안 딴 세상이 되는 것이다.
수술실 간호원이 아기침대를 보호자에게 넘기면서 누구의 아기입니다 라는 소리와 함께 몇 시 몇 분에 태어났고 남아인지 여아인지 간호사가 말을 해 주었다. 그러면 모여 있던 사람들이 잠시동안 자신들의 모든 시름을 잊고 모두들 아기 유모차 앞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모두들 제 일 인양 아기가 이 세상에 태여 난 것을 축하해 주며 피부가 희니 검으니 한 마디씩 하면서 기뻐하는데 그 시각이 한 몇 분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이 시간을 이용하면 우리 아기도 세상의 처음 태여 난 모습을 비디오에 담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마음에 작정을 하고 캠코더를 챙긴 것이었다.
수술 전 날 밤이었다. 자고 있던 아내가 화장실을 간다면 일어나기에 시계를 보았더니 새벽 2시 45분이었다. 나는 항상 시계를 보는 버릇이 있었다. 옛날에 누구한테 편지를 쓸 때에도 일기를 쓸 때에도 말미에다가 항상 시간을 적어두곤 했었는데 그런 버릇 때문인지 무슨 특별한 일이 있으면 시계를 쳐다보곤 했다. 아내가 화장실을 갔다오더니 갑자기 뭐가 흘러내린다며 간호원을 부르라고 한다. 양수가 터진 모양이었다.
나는 즉시 간호실로 달려갔고 잠시 후 아내는 바퀴 달리 침대차에 실리어 어디론가 실려 가 버리고 나는 아내가 자던 빈 침대를 바라보면서 잠을 자는지 마는지 그렇게 아침이 다가왔다. 아내는 아침 8시에 첫 수술을 하기로 시간이 잡혀 있었다. 이런 병 저런 병으로 하루종일 수술실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오는데 그 날은 아내가 제일 먼저 수술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내를 못 볼세라 시간이 되기 전에 미리 수술대기실 앞에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가 정확히 8시 5분이 되자 아내는 서너 명이 미는 침대에 누워서 수술실 앞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아내인데도 뭐가 여러운지 가까이 바짝 다가가지도 못하고 눈 한 번 맞추는 사이에 이미 침대차는 수술실입구를 들어서고 있었다. 무슨 애기를 나눌 사이도 없고 아무 말도 못했는데 아내는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고 미닫이 식으로 된 수술실 문은 굳게 닫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나 혼자 있는 수술 대기실 앞은 적막감이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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