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길목에서 13
―입원 8
아침 이른 시간이라 수술대기실 앞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동안 이야기 듣기로는 수술실에 들어가면 삼사십 분 기다리면 아기가 나오고 산모도 회복실로 갔다가 바로 입원실로 온다고 들었기에 몇십 분만 기다리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고 별다른 생각 없이 아기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한 시간이 지나도록 수술실 출입문은 열리지를 않았다. 의자도 없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그냥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주저앉아 있었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지 걱정이 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입원실에 두고 온 캠코더 생각이 자꾸만 올랐다.
세상을 처음 대하는 아가의 모습을 찍으려고 캠코더를 병실에 가져다 놓고도 막상 수술실 앞에는 가져오지를 못했다. 세상에 태어나는 아가의 첫 모습을 찍으려고 작정하고 집에서 캠코더를 챙겨 왔는데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내를 보러 오면서 급한 마음에 미처 캠코더 잊어버리고 그냥 오고 말았다.
그때 수술이 진행되고 예정된 시간에 아기가 태어났더라면 세상에 바로 나온 모습을 담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출산 시간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왜 이렇게 수술이 늦어질까 걱정하면서도 머리는 빨리 별실로 달려가서 캠코더를 가지고 오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간 지 오십 분이 지나서 아홉 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여덟 시 오 분에 수술실로 들어갔으니까 이미 한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데 수술실 문은 열리지 않고 있었다. 언제 저 문이 열리면서 아기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괜히 캠코더 가지러 간 사이 아기가 나오면 첫 대면도 못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있는 사이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수술실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여기서 아내가 입원하고 있던 병실까지는 복도로 길게 연결이 되어 있는데 그 거리가 거의 이백 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시간은 일 초 일 초 자꾸 가고 있는데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잠깐 얼른 뛰어갔다가 올까... 초조한 마음에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갈등하고 있는 사이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총알처럼 냅다 입원실로 향해 달렸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캠코더를 챙겨서 어떻게 뛰어왔는지 다시 수술 대기실 앞으로 와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기는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었는데 시간이 점점 지체되니까 마음이 불안해지고 있었다. 지금 수술실 안에는 어떤 일이 생겼기에 수술 시간이 늦어지고 있을까.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 정지되어 있는지 멍한 정신 속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불안감은 쌓여가고 아기를 찍으려고 캠코더는 챙겨 왔는데 정작 찍으려고 기다리는 아기가 밖으로 나오지를 않고 있었다.
아기가 세상에 나온 첫 모습을 찍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캠코더를 가지고 오기는 했는데 왜 아기는 왜 이다지도 안 나오고 있는지. 불안한 가운데 잠시의 시간도 무료하게 느껴져 캠코더의 파워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수술 대기실 출입문도 찍고 수술 중이라는 전광판의 글씨도 밀었다 당겼다 줌을 조정하면서 녹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내에 대한 생각을 잠시 잊고 수술실 출입구의 풍경도 찍고 있는데 미닫이로 된 수술실 출입문이 왜 그렇게 크게 보이던지. 수술 중이라는 전광판의 글씨를 찍을 때의 시간을 보니 아홉 시 1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덟 시 오 분에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한 시간이 십 분이 넘도록 아내도 아기도 감감무소식이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낮이라면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오고 가기도 하고 수술 들어간 가족들이 모여서 걱정은 나누면 줄어든다고 이런저런 병에 대해 이야기도 하면서 위로도 하고 위로도 받받으며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잠시 잊을텐 데 이른 아침 시간이라서 수술 대기실 앞에는 나 혼자만 계속 서성이고 있었다. 일일여삼추라고 초조한 시간이 또 얼마나 지났을까.
미닫이 수술실 문이 양쪽으로 환하게 열리면서 간호사의 서 있는 모습과 아기의 침대차가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간 지 한 시간 이십 분이 되어갈 무렵에야 미닫이로 되어 있는 수술 대기실 문이 활짝 열린 것이었다.
간호사의 손에 의해서 아기침대가 수술실 문턱을 타고 넘어오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아기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간호원이 누구 씨의 아기입니다. 아홉 시 십 분에 태여 났습니다. 하는 소리를 아련히 들을 것 같기도 한데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로지 아기를 찍고 싶은 일념으로 캠코더를 작동시켜 아가의 얼굴쪽으로 렌즈를 클로즈 업 클로즈 업 시켰다.
아기는 담요에 싸여서 녹색 포대기 속에 얼굴만 내놓고 있었는데 오른쪽 눈 쪽으로 포대기가 약간 내려와 눈을 덮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간호사가 녹화를 하려고 캠코더를 아기 얼굴 있는 곳으로 갖다 대니까 아가의 눈을 가리고 있는 포대기를 올려주면서 말을 했다.
"어머, 그런데 아기가 자기 찍는 줄 아는가 봐요. 눈을 뜨고 있네요"
간호사의 말을 들으며 아기의 얼굴 쪽으로 줌을 당겨보니까 시선은 비록 아빠를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아기가 간호사의 말처럼 정말 눈을 뜨고 있었다. 일 초, 이 초, 삼 초......그 정도의 녹화 테잎이 돌아갔을까. 나중에 찍힌 것을 봐도 정말 딱 삼 초 정도를 찍은 것 같았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 났는지 간호사 한 사람이 아기 침대를 바람처럼 화악 나꿔 채더니 뒤도 안 돌아 보고 막 달리기 시작 한다. 렌즈에 눈을 대고 마악 촬영을 시작하고 있던 나는 순간적으로 놀라서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같이 따라 뛰기 시작했다.
잠깐만 아기를 찍으려고 했었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아기를 빼앗아서 막 뛰어가고 있으니 아무것도 모르고 나도 그 사람을 따라 뛰어가면서 말을 하고 있었다.
"저 잠깐만, 잠깐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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