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과 사진/수필 17

생활의 길목에서 7―입원 2

생활의 길목에서 7 ―입원 2 아내가 입원한 지 얼마 지났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매일 날짜를 세어 보는 것도 아니고 아마 한 달은 되었을 것 같다. 자는 애들을 깨우고 대충 옷을 입혀서 아내가 입원하여 있는 한일병원으로 향했다. 승용차로는 가다가 신호등 한두 번 받아도 집에서 채 십 분이 안 걸리는 거리이지만 8살 6살 먹은 애들을 데리고 걸어가기에는 좀 먼 거리였다. 일 마무리하고 어쩌다 보니 시간은 이미 밤 11시를 넘어서고 있었고 바깥은 영하의 찬바람이 세상의 사물을 움츠리게 하고 있었다. 아내가 입원한 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한 번씩 때로는 볼일이 있어 두 번씩 갈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날짜도 무감각해져 버렸고 그냥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애들이 추울까 봐 미리 틀어 놓은..

생활의 길목에서 6―입원 1

생활의 길목에서 6 ―입원 1 “아니 입원하라는데 집에는 왜 와, 그냥 바로 입원을 하면 되지...” 나는 앞 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의사가 당장 입원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말에 허둥대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급해지면 나와는 반대로 침착해지는 성격이었다. “ 입원은 몸만 들어가면 되나. 세면도구도 챙기고 여벌의 옷도 필요하고 애들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도 좀 해 봐야지.......” “병원에 입원하는데 세수는 무슨... 그리고 밖에 나가지도 못할 텐데 옷이 뭐가 필요해” 나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도 운전하는 것이 무섭다며 장롱면허를 가지고 있는 아내. 하지만 그때는 나만 운전면허증이 있었고 아내는 면허증도 없었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택시 타고 왔다..

생활의 길목에서 5―임신 5

생활의 길목에서 5 ―임신 5 셋째를 가진 아내의 모습은 정말 첫 아이와 둘째 아이 때와는 달리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손과 발이 부어오르더니 부종이 점점 심해져 이제는 얼굴까지 눈에 띄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문득 둘째 애를 가졌을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도 한 번 경험이 주는 무딤 때문에 다달이 병원에 가지를 않고 있다가 아이가 거꾸로 서 있는 바람에 멀쩡한 배에다 칼을 대서 둘째를 얻어야 했던 호된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첫 번째 임신 때는 첫 임신이라 모르는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아 또 겁이 나서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또박또박 다니며 의사의 지시에 충실히 따른 덕분에 가정집 분위기가 느껴지는 동네의 산부인과에서도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자연분만을 했었는데 둘째 때는 그렇지를 못했다. 임신 사실..

생활의 길목에서 4―임신 4

생활의 길목에서 4 ―임신 4 아내가 족발을 그렇게 먹고 싶어 했지만 사주지 못했던 이유는 아주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내가 족발에 대해서 상당히 안 좋은 이미지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서 족발을 한 번도 먹어 본 적은 없었지만 만드는 과정을 많이 본 적은 있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직장은 동대문운동장 뒤편에 있는 신당동 시장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항상 시장을 지나가야 했는데 거기에는 언제나 머리 고기와 족발을 팔고 있었는데 족발 만드는 과정이 영 위생적이지 않아서 모든 족발을 저렇게 만드는 줄 알았다. 시장 건물 옥상에서 돼지 발을 잔뜩 쏟아 부어 놓고는 부탄가스로 돼지 다리 털을 그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주위 환경이 상태가 지저분하고 아주 더러웠다. 게다가 무슨 기름인지..

생활의 길목에서 3―임신 3

생활의 길목에서 3 ―임신 3 지금은 다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갔지만 중학생이던 둘째 아이의 이야기인데 딸아이를 키우다 보면 재미있는 일도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나만이 알고 있는 민망한 목욕탕 사건도 하나 있었다. 그 전과는 달리 요즘은 목욕탕에 가보면 아주 가끔 여자애를 데리고 남탕에 오는 자상한? 아빠가 어쩌다 보이는데 우리 딸애들이 돌 미만까지 매번 목욕탕에 갈 때마다 내가 데리고 다녔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는 추억이기도 하지만 지금 같으면 딸아이를 데리고 남탕에 데리고 갈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딸애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자주 갔었다. 한 번은 둘 째 아이가 탕 안에 서서 공을 물에 담갔다 건졌다 하면서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생활의 길목에서 2―임신 2

생활의 길목에서 2 ―임신 2 그 뒤 아들에 대한 아무런 욕심도 없었다. 시택이나 처가댁 주변에서 아들 없다고 해서 구박 주는 사람도 없었고 어쩌다 명절 때 한두 번 가는 고향에서 아버지로부터 딸자식은 다 쓸모없다는 말을 듣기는 하였지만 그 누구도 우리에게 아들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도 않았고 강요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간혹 누가 딸딸이 아빠라고 하면 듣기는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화낼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동네에서 장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의 많은 사람으로부터 아들 낳는 비법? 을 귀동냥으로 들을 수는 있었다. 어떤 말은 정말 황당무계하고 미신 같은 말도 있지만 여성의 체질이 산성화되어 있으면 딸 낳을 확률이 높다는 말은 신빙성이 있었다. 여자가 산성으로 된 음식을 먹고 반대로 남자가 알칼리성음식..

생활의 길목에서 1 ―임신 1

1994년 12월 막내 아들이 태어났는데 딸 둘을 낳고 세 째가 생겼는데 임신 중독으로 아내가 한일병원에서 두 달간 입원해서 막내 아들이 태어났는데 몸 무게가 2.3킬로 밖에 안 되고 수술 과정에서 복수를 먹어 태어나자마자 입원해서 15일 동안 입원하고 퇴원한 이야기. 생활의 길목에서 1 정호순 ―임신 1 1994년 봄 어느 날 아내가 임신 사실을 알려 왔다. 순간 나는 당황을 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어찌해야 할까 생각을 했다. 비록 딸이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애가 둘이나 있었고 무엇보다도 나이가 문제였다. 내 나이 이미 마흔이 코앞에 있었고, 아내 나이도 나보다 몇 살 아래지만 임신해서 애를 키우기에는 힘이 부치는 삼십 대 중반이었다. 아마 태어나는 아기가 남자라면 내 나이 환갑이 되어야 대학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