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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를 믿으시나요?

흰구름과 함께 2024. 1. 30. 10:18

사주를 믿으시나요?

 

  성종은 조선시대 9대 왕이었지요. 9대하니 굉장히 긴 것 같습니다만 태조이래 사람만 9명이 바뀌었다는 것이지 2대인 정종과 3대인 태종은 태조 이성계의 아들이었고 조카인 단종을 적소의 땅 영월 청렴포에 유배를 시키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조선시대 최대의 성군인 세종의 아들이지요. 그 밑에 예종, 성종은 세조의 아들이구요. 세조의 아버지는 세종, 세종의 할아버지가 태조니까 성종과 조선개국왕인 태조와는 핏줄로 따지면 5대밖에 되지 않지요. 세종은 6명의 부인에게서 18남 4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5대왕인 문종과 7대 왕이 된 세조는 같은 어머니인 소헌왕후를 어머니로 두었습니다.

 

  세조는 아버지인 세종의 문의 피를 이어받지 않고 할아버지인 태종의 무인기질을 받고 태어났나요. 같은 어머니인 소헌왕후와 같은 아버지인 세종에게서 같은 피와 살을 받고 태어났는데 병약한 형인 문종과는 기질이 전혀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하기사 그 다른 무인 기질이 그를 왕위에 앉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길로 인도를 하였는지도 모르지요.

 

  만약에 심약한 위인이었다면 나라꼴이 우습게 돌아가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다른 일에 심취하며 일생을 마쳤겠지요. 사주이야기를 제목으로 달아놓고 조선왕조의 계보를 말하려는 것은 아닌데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외척은 물론이고 세력이 커지는 것은 원치 않았던 태종은 네 처남까지 사형시키는 등 왕권에 도전하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무지막지하게 탄압을 하여 태평시대를 아들인 세종에게 물려줍니다.

 

  아버지의 많은 피로 이룩해 놓은 태평시대에 세종은 빗물을 그릇에 받아 재는 측우기를 비롯하여 천체를 관측하는 기구인 비단측우기, 물시계인 자격루, 해시계인 양부일구를 세상에 내 놓았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찬란한 업적은 바로 우리민족의 자랑이며 가장 보배로운 한글, 훈민정음이지요. 세종의 찬란한 명성에는 견주지는 못하나 역시 무인기질의 아버지 세조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성종도 경국대전을 완성하는 등 성군으로 알려져 있지요.

 

  자나깨나 나라 걱정을 한 성종은 재임 시에 미행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직접 살펴도 보고 민심도 알아볼 겸 보통양반의 옷을 입고 무감 두엇을 데리고 자주 미행을 나가 셨다고 하는데 그 미행 일화 중의 하나입니다. 어느 해 겨울 많은 눈이 내리고 고추바람이 휘몰아치는 밤이었 습니다..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이 지극한 성종은 잠이 오지 않아 별감을 대동하고 이 추운 날 미행을 나갔습니다.

 

  인적 드문 거리의 남산골 막바지에 올라서니 삼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립니다. 사방이 다 얼어붙어 적요한데 어디선가 글 읽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글 읽는 소리를 따라가 보니 다 쓰러져 가는 오막집에서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삽짝문밖에서 가만히 귀 기우려 들으니 읽고 있는 책은 [춘추] 였는데 주석은 막힘이 없었으나 목소리에 힘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부인인 듯한 50대의 여자가 안방에서 나오더니 방을 향해 말을 했습니다.

 

   "이틀이나 굶으신 양반이 냉방에서 글만 읽고 있으니 그러 다가 큰일나겠소. 그만 읽으시고 주무시오." 그러자 글을 읽던 목소리가 힘없이 대꾸를 했습니다. "배가 고픈데다가 방까지 냉골이니 잠이 오지 않는구려. 그래서 추위를 잊어볼까 글을 읽는 참이었소." 유생의 한탄하는 소리에 성종은 기침을 하고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이틀씩이나 굶으면서 글을 읽는 선비가 가상하기도 하려니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부인은 놀라 얼른 안방으로 들어가고 유생이 문을 열고 물었습니다. "누구시오. 이 야심한 밤에?" "지나가는 사람인데 등불이 꺼져서 불을 좀 얻을까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왔습니다." 이 말에 그의 부인이 나와서 등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날도 추운데 이왕 들어왔으니 좀 쉬었다 갑시다." 불을 얻으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종은 들어 오라는 말도 없는데 무작정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은 얼음장같이 차가운데 5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주인은 방석도 없이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성종은 주인과 수인사를 나눈 다음 학문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주인은 별 생각 없이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이야기했고 대화를 나눌수록 성종은 그의 박학다식함에 놀라고 말았습 니다. 그만큼 주인의 지식이 풍부하였던 것입니다. "주인같이 해박한 지식을 가지신 분이 어찌하여 여지껏 등과를 못하고 있소.

 

  혹시 시관들의 부정이 있었던 게 아니오?" 성종은 과거에 대한 불만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부러 슬쩍 떠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성군 밑에 부정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지요. 제가 우매한 탓도 있지만 과거란 원래 관운이 있는 사람이 등과를 하는 법이지요. 모두 사주명수를 잘 타고나야 비로소 성공을 하는 것이지요." 성종은 그럴 리가 있냐며 딱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든 그를 도와줄 수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해 보았습니다. 이윽고 어떤 생각이 떠오른 성종은 그에게 개인 문집을 좀 보여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부끄럽다고 주인은 계속 사양을 하였으나 성종이 하도 청하는 바람에 마지못해서 그 동안 지은 글을 묶어 놓았던 문집 중에서 몇 권을 내어놓았습니다. 성종은 책장을 넘기다가 그 중에서 가장 잘 된 대목을 손으로 가리키며 극구 찬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은근 슬쩍 과거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내가 누구한테 들으니 수일 내로 과거가 있다는 소문이 들리 던데 주인장께서도 혹시 알고 계십니까?" 성종의 물음에 주인은 금시초문이라고 했습니다.

 

  성종이 순간적으로 지어난 말이었으니 주인이 그 소식을 들었을 리가 만무했습니다. 성종은 과거가 있으니 이번 과거에 꼭 응시를 하라고 거듭거듭 재차 당부를 하고 그 집을 나왔습니다. 선비 집에서 나와 환궁을 한 성종은 굶고 있는 선비가 영 마음이 편치 않아서 별감에게 시켜 쌀과 고기를 그 집 문 앞에 갖다 놓고 오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유생이 일어나 보니 마당에 쌀과 고기가 놓여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제 밤중에 다녀간 분의 언행이 범상치 않아 보였는데 그제서야 그 분이 왕이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대궐을 향하여 절을 올리고 오랫동안 굶주린 배를 고기와 밥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튿날 성종은 대제학을 불러 과거령을 내리게 하였습니다. 남산골 늙은 유생의 귀에도 이 소식이 들어갔고 유생은 이제야 그 동안의 소원이 이루어지나 보다 하고 아주 기뻐하였습니다. 이윽고 과거 날이 되었습니다. 성종은 과제를 그날 밤에 유생의 집에서 본 그 대목을 제목으로 내걸었고 당연히 그 유생이 장원급제를 하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봉을 떼어보니 글을 지은 사람의 이름은 그 유생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성종은 장원한 사람을 불러 들였는데 들어온 장원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새파란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곡절을 알 수가 없어 성종은 노하여 이실직고를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젊은이는 그간의 자초지종을 고변하였습니다. "아니올시다. 그 글은 소인의 글이 아니라 스승이 지은 글이옵니다." 그러면 너의 스승은 어찌하여 오늘 과거를 보러 오지 않았느냐고 성종이 다그쳐 물었습니다. "저의 스승께서도 오늘 과거를 꼭 보려고 했사오나 굶주리시다가 갑자기 먹은 고기 때문에 그만 탈이 나고 말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더 위중하여 과거를 보러 도저히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 글 또한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적어낸 글이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성종은 용상을 탁 치면서 말했습니다. [어허! 등과란 그의 말대로 팔자에 관운이 있어야하는구나. 운명과 재수에 달린 것이로구나.] 하며 몹시 탄식을 하며 못내 아쉬워했다고 하였습니다. 사주란 사람이 [난 해, 달, 날, 때]의 네 가지로서 사람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자료가 된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만 놓고 보면은 사주라는 것을 전혀 안 믿을 수도 없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텔레비젼이란 물건이 나와 지역간의 언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도농간의 정보격차를 없애더니 지식의 홍수로 말미암아 오히려 잘못된 지식의 정보가 오류를 일으킬 정도가 되었습니다. 음식도 자기 체질에 맞게 가려서 먹어야 건강에 이롭든 스스로 알아서 정보를 먹어야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마구잡이로 먹다보니 그 피해와 해독이 우려할 수준에까지 도달을 하고 말았습니다. 안방에 가만히 앉아서 세계의 곳곳을 누빌 수 있는 인터넷 정보망이 거미줄처럼 깔려 있는 세상에서 사주가 얼마만큼 위력을 발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상도 출신의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어느 티브에서 사주에 대해서 재미있는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사주가 얼마나 맞을까.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태어나는 사람도 많은데 현직대통령과 같은 사주를 타고난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있을까. 있다면 그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실험이었지요. 태어난 해와 달과 날, 그리고 시까지 맞는 사람을 찾아보았더니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직의 대통령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날부터 승승장구 하여 대통령에 오른 것과는 달리 별다른 재산도 없이 시골에서 아주 평범한 농부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주란 분명 믿을 게 못되지요. 그렇다면 사주를 믿으라는 건가요 말라는 건가요. 믿고 안 믿고 할 게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떤 책에서 보니까 노력 35퍼센트, 환경 15퍼센트, 노력이 35퍼센트 그리고 관상이 15퍼센트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수상이 좋다고 해도 관상만 못하고 관상이 좋다고 해도 사주만 못하고 사주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노력만 못하다고 하지요.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사주를 아무리 잘 타고 나와도 노력을 안 하면 말짱 헛것이겠지요. 사주는 주로 음력으로 봅니다만 양력 새해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부동산이 돈 폭탄으로 되돌아온다고 너도나도 부동산광풍에 휩싸이고 나라의 허리층인 중산층이 무너지고 부익부빈익빈 양극화 현상이 더 벌어져 일자리도 없고 일할 의욕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사주(운명)를 바라보면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겠지요.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 하며 가정의 행복을 스스로의 힘으로 일으켜 세울 때 운명 또한 비켜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긍정의 씨앗을 심으면 긍정의 새싹이 자라고 부정의 씨앗을 뿌리면 부정의 뿌리가 내린다고 했지요. 다가오는 새 해는 긍정적인 씨앗을 심어서 굳고 튼튼한 뿌리가 땅 속 깊이 내리기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원을 해 봅니다.

 

 

2006년 12월 30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