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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순] 한 사람 ―[오정순의 디카시가 있는 수필]

한 사람 엄마 손 놓친 아이처럼 낯선 길에서 불안해할 때 초록 문으로 안내하며 빛이 되어 주던 그런 사람이 있었지 ―정호순 [쪽수필] 교직을 그만 두고 출판사 디자이너로 식물도감을 그릴 무렵, 나의 손 맛은 전문인 냄새가 슬금슬금 나기 시작했다. 때에 맞물려 칼라 인쇄가 도입되고 나는 전격적으로 아동물전문 출판사로 스카웃 되었다. 낮에는 새 직장에서 밤에는 전 직장에서 일하며 심리적 초록 문이 보일 즈음 새로운 문제와 부딪쳤다. 추석 전, 교통체증이 심하다고 직원들 봉급 봉투를 책상에 올려주고 빨리 퇴근하라고 배려했다. 무심결에 누군가가 내 봉급봉투를 뒤집어 보고 근무 연차도 낮은데 봉급 책정이 불합리하다고 이의를 달며 문제시 했다. 그 때 빛이 되어준 한 사람, 젊은 사장님이 있었다. “당신들이 결석을..

푸른 잎 하나 /신달자

푸른 잎 하나 신달자 완전히 벗은 몸으로 다만 푸른 잎 하나 들고 수술대 위에 누웠습니다 다 버렸지만 푸른 잎 하나는 손에 꽉 쥐고 있었습니다 전신 마취에 나는 사라지고 내 몸에서 삼겹살 일 인분쯤 칼에 잘려 나갔습니다 내가 가장 아끼던 부위의 살이었습니다 반으로 절개된 살점은 얼마나 그리움에 진저리를 칠 것인가요 따뜻한 입술이 그리운 곳에 피로 범벅된 낭자한 칼들과 바늘이 놀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푸른 잎 하나를 그대로 들고 수술대 위에서 회복실로 다시 입원실 침대로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온몸에서 푸른 잎하나가 이미 자녀들처럼 온몸을 덮어 나는 아무것도 잃은 것 없이 절개된 인생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ㅡ시집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민음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