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길목에서 16
―병원11
침대에 무거운 몸을 맡긴 채 탈진해 누워있는 사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의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여자들은 저렇게도 힘이 드는데 남자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으니...
그런데도 여자들은 두 번 다시 애 안 낳는다고 해 놓고 시간이 지나면 망각해버리고 또 아기를 가지는 것을 보면 망각은 종족 보존을 위한 신의 배려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의료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시절에 태어난 그 옛날 우리네의 엄마들은 얼마나 많은 불안과 고통을 겪으며 우리들을 낳았을까. 결혼하고 아이를 키워 봐야 부모의 심정 안다더니 부모가 되었지만 얼마나 부모의 심경을 헤아려 보았을까.
행여 잠자는 데 방해가 될까 말 한마디 건네기도 조심스러워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는데 초췌한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몇 개가 아내의 눈으로 내려와 있다. 이마 위로 쓸어 올리니 눈물인지 땀인지 촉촉한 물기가 손에 와 닿는다.
회복실은 냉기가 있을 정도로 춥다던데 아내의 얼굴에는 땀과 눈물이 섞여서 얼굴에 배여 있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실눈을 뜬 아내가 아기에 대해 물었다. 아기를 보았는지 상태는 괜찮은지 물어보는데 몇 초를 본 것도 보았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괜찮다고 해야 하는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지금은 영상보드로 파일을 변환해서 시디로 다 구워 놓았지만 지나간 캠코더 필름에는 초록색 포대기에 싸여 있는 그때 그 몇 초 동안의 장면이 찍혀 있고 다른 사람보다 수술 과정이 좀 길기는 했지만 멀쩡한 아기의 얼굴을 잠시라도 보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아내가 아이의 상태를 물어보는 데는 이유가 있었지만 나는 지금 눈앞에 보이지 않는 아기보다 내 앞에 힘없이 축 늘어진 한 여인이 더 걱정스러워 아기의 생각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기는 면회 시간에 가서 보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더니 면회 시간이 지나간다며 빨리 가서 보고 오라고 재촉한다. 종합병원은 엄마와 아기를 분리해 놓아 아기의 면회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첫애가 태어날 때는 산실에만 들어가지 못했지 씻겨서 바로 엄마 옆에 아기를 눕혀 놓아 마음대로 볼수 있었고 조심스러우나 만져볼 수도 있었는데 종합병원은 그렇지를 못했다.
아기가 태어나면은 당연히 엄마의 젓을 먹여야 하는데 엄마와 아기가 떨어져 있으니 당시의 종합병원은 처음부터 모유를 먹일 수 없게끔 설계되어 있었고 엄마가 젖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분유에 맛이 들어 분유에 길들어진 아기는 나중에는 엄마 젖꼭지보다 인공 젖꼭지를 더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분유 젖꼭지는 모양이 길고 가늘어서 아기가 쉽게 빨 수 있게 되어 있고 그리 힘들게 빨지 않아도 술술 잘 나오게 되어 있으나 분유 젖꼭지에 비해 엄마 것은 짧고 굵어 물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죽어라 빨아도 잘 나오지 않으니 아기는 짜증을 내고 울음으로 항변을 한다. 내가 먼저 먹던 젖꼭지를 달라고.
엄마가 아무리 엄마 젖꼭지로 젖을 먹이고 싶어도 맨 처음에 한 번 맛본 인공 젖꼭지 때문에 아기는 유두 혼란에다가 조금만 빨아도 쉽게 줄줄 나오는 분유를 먹던 기억 때문에 엄마 젖은 죽으라고 빨아도 땀만 뻘뻘 나고 젖은 잘 나오지 않으니까 아기가 거부를 하고, 아기가 젖을 빨지 않고 울고 보채면 마음 약한 엄마는 순간적으로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분유통을 물리는데 하루 이틀 그렇게 하다 보면 모유 수유는 영영 물 건너가는 것이다.
아기가 우유나 엄마 젖을 빨 때 자세히 보면 혓바닥을 젖꼭지에 감아서 빨고 있는데 우유 젖꼭지는 엄마 젖하고는 달리 쉽게 말리고 빨기도 쉽게 되어 있어 쉬운 노동을 알아버린 아기는 힘든 노동은 마다한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할 때 엄마 젖 먹던 힘까지 다하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엄마 젖 빠는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힘든 노동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 같다.
거기다가 초유가 좋다고 초유를 먹이라고 하는데 당시 우리 아기가 입원하고 있던 종합 병원은 모유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두지 않았다. 초유는 산모가 아기를 출산한 후 3일까지 신생아에게 먹이는 모유를 초유라고 하는데 이 초유에는 면역기능과 태변을 배설하고 영양소 또한 풍부해 신생아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 들어있어 꼭 먹이라고 한다. 하지만 많은 종합병원에서는 건물 구조가 산모와 격리를 시켜서 처음에 잘못된 수유 습관으로 지금도 많은 아기들이 엄마 젖이 아닌 소 젖을 먹으며 자라나고 있다고 한다.
출산하면 엄마와 아기가 같이 있게끔 되어 있다면 처음부터 굳이 분유를 먹일 필요가 없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기가 모유를 먹으면서 성장을 할 텐데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모유 먹이는 비율이 낮은 것은 이러한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모유 먹이기 운동본부에서는 출산 직후에 아기들이 처음 먹는 음식으로서 병원에서 주는 포도당이나 분유 같은 것도 일절 주면 안 된다고 못 주게 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입맛을 버려놓으면 모유 먹이는 것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아울러 초보 엄마들에게 모유 먹이기 성공하는 방법을 홍보하고 있으며 우유가 모유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현혹한 광고를 규제 또는 금지 시키는 법적 노력도 하고 있다고 당신의 뉴스들은 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홍보하고 노력해도 엄마들의 인식과 의식 전환이 없이는 되지 않으며 강제적인 법 적용으로 병원마다 산모와 신생아를 가까운 거리에 두고 편리한 시간에 수유를 편케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야만 새로 태어나는 아기들은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엄마의 사랑스런 손길 속에서 엄마의 젖을 맘껏 먹으며 튼튼하게 자라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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