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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 ―동물계 소파과 의자속 남자 사람 /권혁웅

흰구름과 함께 2024. 3. 19. 09:34

동물의 왕국

―동물계 소파과 의자속 남자 사람

 

권혁웅

 

 

소가 트림의 왕이자 이산화탄소 발생기라면

이 동물은 방귀의 왕이자 암모니아 발생기입니다

넓은 거실에 서식하면서 소파로 위장하고 있죠

중추신경은 리모컨을 거쳐 TV에 가늘게 이어져 있습니다

배꼽에 땅콩을 모아 두고 하나씩 까먹는 습성이 있는데

이렇게 위장하고 있다가 늦은 밤이 되면

진짜 먹잇감을 찾아 나섭니다

치맥이라고, 조류의 일종입니다

이 동물의 눈은 카멜레온처럼 서로 다른 곳을 볼 수 있죠

지금 프로야구와 프리미어리그를 번갈아 보며

유생 때 활발했던 손동작, 발동작을 회상하는 중입니다

본래 네발 동물이었으나 지금은 퇴화했거든요

이 때문에 새끼를 돌보는 건 흔히 어미의 몫이죠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큰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급격한 호르몬 변화 때문인데요

이를 월급이라고 합니다

이 동물은 성체가 되자마자 수컷끼리 모여서 각축을 벌이는데

이런 집단이 군대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거기를 끔찍이 싫어하면서도

거기서 축구한 얘기는 자꾸 떠벌이는 습성이 있습니다

여자가 어딜 감히, 이런 소리도 가끔 내지만

대개는 빠지고 없는 털을 곤두세우는 것과 비슷한 과시행동입니다

퇴화된 앞발을 들어 사타구니를 긁거나

화장실 변기 주변에 오줌을 묻혀 영역을 표시합니다

발정기가 따로 없는데도 첫사랑은 못 잊는다고 징징댑니다

지금 이 동물은 짧은 주기의 겨울잠을 자는 중입니다

곧 변태를 하고 출근할 예정이거든요 이 증세를 월요병이라 합니다

잠시만 그를 더 지켜보기로 하지요

 

 

―시집 『세계문학전집』(타이피스트,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