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과 사진/수필

생활의 길목에서 3―임신 3

흰구름과 함께 2023. 2. 21. 09:29

생활의 길목에서 3

 

―임신 3

 

 

   지금은 다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갔지만 중학생이던 둘째 아이의 이야기인데 딸아이를 키우다 보면 재미있는 일도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나만이 알고 있는 민망한 목욕탕 사건도 하나 있었다. 그 전과는 달리 요즘은 목욕탕에 가보면 아주 가끔 여자애를 데리고 남탕에 오는 자상한? 아빠가 어쩌다 보이는데 우리 딸애들이 돌 미만까지 매번 목욕탕에 갈 때마다 내가 데리고 다녔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는 추억이기도 하지만 지금 같으면 딸아이를 데리고 남탕에 데리고 갈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딸애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자주 갔었다. 한 번은 둘 째 아이가 탕 안에 서서 공을 물에 담갔다 건졌다 하면서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 아빠, 쉬 ” 한다.

전에도 그런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무심코 목욕 뒷물이 내려가는 구석진 하수구를 가리키며 “응, 저쪽에 가서 하고 와”

했더니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쌌어” 하면서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오줌이 마렵다더니 이미 싸버렸다는 무슨 말인가. 딸아이는 오줌이 마렵다는 생각과 말을 동시에 하면서 이미 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 놓고도 의아해하며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는 눈도 안 맞추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계속 공을 물에 담갔다 뺐다 하면서 잘도 놀고 있었다.

 

   탕에서 공을 가지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저도 모르게 그냥 실례를 한 것 같은데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오줌을 싸버렸다면 아예 말을 하지 말지 갑자기 오히려 내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는 하나 여러 사람이 피로를 푸는 탕 안에서 실례를 하다니... 나는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마침 평일날 낮시간이라 사람이 드문드문 있어서 듣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왠지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나와서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더러움이 뭔지도 모르는 세 살 먹은 철없는 애가 하는 천진난만한 짓이라 그 자리에서 공중도덕이니 뭐니 하면서 야단치는 것도 그렇고 아무리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도 오줌을 탕 안에서 싸면 절대로 안 된다고 세세히 설명하는 것도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나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냥 공을 가지고 노는 딸애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였다.

 

   두 살 터울인 딸 둘을 데리고 한동안 연이어서 목욕탕에 열심히 다녔지만 일반적인 상식이 부정으로 기우러지는 나이가 되는 서너 살이 되어서는 물론 엄마를 따라 둘 다 여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셋째가 태어날 때까지의 목욕탕 가는 일은 언제나 나 혼자였었다. 그 셋째 되는 아이가 커서까지 나하고 같이 목욕탕에 가게 될지 아니면 두 딸처럼 서너 살까지 가고 그만 가게 될지는 엄마 배 속에 있으니 알 수 없었으나 아무튼 나는 홀가분해져 좋았는데 반대로 아내는 딸 둘을 데리고 목욕탕에 한 번 갔다 오면 지치고 힘이 든다고 푸념을 하였다.

 

   생각지도 않았고 계획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아내는 임신을 하였고 계획을 하든 안 하든 인생은 예기치 않는 일들이 생기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 같은데 그런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있기에 인생은 또 그 나름대로 재미를 안고 미래라는 열차를 타고 세상 구경을 떠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당시는 주위에 애들 셋 있는 집이 많지는 않았고 하나 있는 집도 꽤 많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집, 집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남매 있는 집이 가장 많았고 현재의 우리 집처럼 딸 둘인 집도 많았다.

 

   지금부터 한 세대도 지나지 않은 삼십여 년 전인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강제적이지는 않았으나 셋째를 가졌다면 은근히 주위의 시선에 신경이 가던 시절이었다. 생각해 보면 죄지은 것도 아니고 창피한 일도 아닌데 그래도 왠지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둘도 많다, 하나만 잘 기르자‘ 는 표어가 돌아다닐 때였으니까. 그러나 생명이 생기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기에 그대로 받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을 했고, 이 세상 어느 곳에 내가 알 수 없는 운명에 의해서 자식이 둘이 아니라 세 명이니까 낳아서 잘 키우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 같아 무사히 출산만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현실을 인정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셋째를 가진 아내는 아무 음식이나 잘 먹었다. 원래 식성이 맵고 얼큰한 음식을 좋아하기는 했으나 특별히 음식을 가리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은 아기를 가지면 임신이 되는 순간부터 적어도 몇 개월간, 더러는 출산할 때까지 음식을 잘 못 먹을 뿐 아니라 비위가 상해서 음식 냄새도 못 맡아 무지 고생이 심하다는데 거기에 비하면 아내는 식성만은 좋은지 돌아서 토하고 나서 다시 음식을 잘도 먹었다.

 

    잘 먹으니 보기에도 좋았지만 이번에 나는 아내가 먹고 싶다는 음식은 뭐든지 요구하는 대로 다 사다 주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위로 두 애들 가졌을 때보다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고 그것 보다도 나는 아내에게 갚아야할 빚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평생 갚지 못할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빚은 우연하게도 아내가 셋째를 가짐으로서 갚을 기회가 온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결혼하고 아내가 임신한 분들은 다들 겪어 보았겠지만 여자들은 임신하면 갑자기 무슨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는데 그 식욕이 얼마나 강하고 끈질긴지 때로는 정말 이해가 잘 가지 않을 때도 있다. 또 한 번 조르기 시작하면 안 사다 주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을 정도로 집요하게 조르고 먹고 싶은 음식 타령을 하기 때문에 남편들은 길게는 출산 때까지 시달림? 을 받을 때도 있다. 그렇게 먹고 싶으면 자기가 직접 가서 사 먹으면 되지 왜 굳이 사오라고 계속해서 졸라대는지, 뭐 직접 사 먹으면 맛이 없다고 한다.

 

   정말 맛이 없는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정말 맛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남편이 사다 주면 더 맛있는지 그 집요함에 그만 못 이겨 사다 주면은 정말 맛있게 먹을 때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헛구역질하면서 못 먹을 때도 있다. 그런데 나는 아내가 둘째를 가졌을 때 수시로 조르고 출산하기 전까지 사다 달라고 졸라도 끝끝내 모른 척 사다 주지 않았던 음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돼지 다리로 만든 족발이라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어쩌다가 화제가 아들 얘기가 나오면 아내는 둘째가 배 속에 있을 때는 아들이었는데 그때 먹고 싶은 족발을 못 먹어서 아들이 딸로 바뀌어서 나왔다고 뼈있는 농담을 하곤 했는데 둘째를 가졌을 때 먹고 싶었던 족발을 못 먹어서 섭섭한 감정이 앙금처럼 남아서 그렇나보다 생각을하면서도 다시 임신하지 않고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마음 한구석으로 늘 빚진 것 같은 죄 아닌 죄를 진 것 같은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빚이라면 갚을 수 없는 빚이었기에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셋째가 먼 여로를 돌아서 우리 곁은 오고 있었던 것이다.

 

   임신 중에 아내가 그렇게 먹고 싶다며 이야기를 수시로 꺼냈던 족발은 무슨 특별하고 비싼 음식도 아니었고 또 거창하고 이유다운 이유가 있어서 안 사다 준 것은 아니었는데 끝까지 족발을 사다 주지 못했던 것은 나에게는 바로 다음과 같은 족발에 대해 깨끗하지 못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