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길목에서 2
―임신 2
그 뒤 아들에 대한 아무런 욕심도 없었다. 시택이나 처가댁 주변에서 아들 없다고 해서 구박 주는 사람도 없었고 어쩌다 명절 때 한두 번 가는 고향에서 아버지로부터 딸자식은 다 쓸모없다는 말을 듣기는 하였지만 그 누구도 우리에게 아들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도 않았고 강요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간혹 누가 딸딸이 아빠라고 하면 듣기는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화낼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동네에서 장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의 많은 사람으로부터 아들 낳는 비법? 을 귀동냥으로 들을 수는 있었다. 어떤 말은 정말 황당무계하고 미신 같은 말도 있지만 여성의 체질이 산성화되어 있으면 딸 낳을 확률이 높다는 말은 신빙성이 있었다. 여자가 산성으로 된 음식을 먹고 반대로 남자가 알칼리성음식을 장기간 섭취한 다음에 체질을 개선한다면 아들을 낳을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는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기자신앙이라고 자식 중에서도 아들을 얻어 무병장수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기를 기원하는 신앙에는 남근석이나 남근을 닮은 바위 밑에서 정성을 들이고 돌을 붙이면 아들 낳는 소원이 이루어진다거나 고추를 상징하는 사물을 은밀한 곳에 숨기거나 몸에 지니고 다니면 된다거나 하는 비방법이 돌아다니고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채워주고 있었다.
이런 민간신앙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정말 항간에 떠도는 말 중에는 아들 낳은 집 산모의 팬티를 입으면 아들을 임신할 수 있다거나 각종 아들 낳는 다양한 비법들도 있다지만 아들을 갖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애초부터 없었던 내게는 아무런 흥미와 관심을 를 끌만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내가 보고 듣고 관심을 기울인 것은 단지 지적 호기심 외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알칼리성 음식을 먹지도 않았고 오리려 산성 음식인 고기가 더 식성에 맞았고 반대로 아내는 알칼리성 음식인 채소를 더 종아했다. 그러니 알칼리성 음식이 건강에 더 좋다고 해도 평소에 먹지 않는 음식을 일부러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자식을 더 이상 가질 일도 없었고 낳을 생각도 아예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딸아이들은 커 가면서 온갖 재롱과 어여쁘고 귀여운 행동으로 생활에 활력이 되어 주었으며 세파에 찌들어서 자꾸만 혼탁해져 가는 심신을 정화 시켜 주기도 했다. 딸들이 어렸을 때 유취에서 나오는 아기 특유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내음이 너무 좋아서 안아 주고 업어 주면서 얼마나 많은 생활의 활력소 얻었었던가. 바쁜 중에도 아기만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바람 없는 하늘에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듯 근심 걱정과 사소한 일들은 다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아기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있으면 한없는 고요와 한가로움이 망중한을 만들어 주는데 아가의 새까만 눈동자는 왜 사느냐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 주기도 하였다.
딸애들이 커가면서 쉬는 날이면 집 안에 있지 않고 애들을 데리고 부지런히 밖으로 돌아 다녔다. 집에서 가까운 북한산에 올라 맑은 공기 마시며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놀이공원인 드림랜드나 능동의 어린이대공원 등에도 다니며 재미있게 놀아 주기도 했다. 옛날에 왕들이 살았던 창경궁이나 경복궁에 가면은 궁궐의 유래와 역사 등을 설명해주며 다니는 곳곳마다 애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도록 눈(眼)속에 영상도 심어 주고 카메라와 캠코더에 추억을 담아 두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 어떤 때는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청계천으로 나갔다. 동대문운동장에 내리면 많은 노점이 옷가지와 장난감과 과일 등을 팔고 있었다. 평화시장 건너편에 있는 신평화 상가 앞에는 노점 음식점들이 쪽 모여 있었다. 거기에는 곱창과 가락국수, 만두와 떡볶이를 팔았는데 항상 사람들이 붐볐다. 우리도 나갈 때마다 들려서 의자가 없으면 길거리에 서서 잔치국수, 곱창, 떡볶이를 먹었는데 배를 채우고 나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연두색 꽃무늬가 예쁜 원피스도 사고 딸아이에게 어울리는 나비 핀이랑 여러 가지 모양의 머리 끈과 구두와 슬리퍼 운동화도 샀다. 이것저것 생활에 필요한 잡다한 물건들을 사다 보면 모두가 아이들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세상의 물건이란 물건은 모두 아이들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집에 아이가 생기면 집안 환경이나 음식 등 모두가 아이들의 중심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일요일이면 많은 사람이 물건을 사러 이곳에 나오는데 외국인도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부딪치며 청계 6가에서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황학동 벼룩시장은 중고품의 세상이다. 무엇이나 어떤 것이나 원하는 것은 다 구할 수 있다고 하는 벼룩시장은 중고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세월의 뒤편으로 밀려난 비디오테이프를 파는 가게도 많이 있었다. 비디오테이프는 점점 DVD에 그 자리를 내주더니 이제는 그것마저 자취를 감추고 usb 시대가 되었다. 당신 애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영어 비디오, 한글 비디오, 자연 다큐멘터리 등 수많은 비 디오테이프들는 아이들 떠나간 빈방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황학동 벼룩시장은 청계천 고가다리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서울 시민의 휴식처를 만들고 그 옛날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을 만들기 위해 복원사업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개천을 변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선거공약으로 시작된 청계천 복원사업은 시민들에게 휴식 공간을 만들어 주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노점상들의 생존권의 위협이 되기도 하였다.
온몸으로 항의하고 시위를 해보지만 생활이라는 명분만 있을 뿐 법도 육체도 그들을 보호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이어가던 생존의 터전이었던 도로에다 걱정이라는 피와 눈물을 뿌렸지만 한 번 정해진 역사의 물줄기는 바꿀 수는 없었다. 그들은 동대문운동장에다 임시로 터전을 열었지만 이제는 그 흔적마저도 찾을 수가 없다. 어쩌겠는가.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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