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정호승
슬픔이 택배로 왔다
누가 보냈는지 모른다
보낸 사람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
서둘러 슬픔의 박스와 포장지를 벗긴다
벗겨도 벗겨도 슬픔은 나오지 않는다
누가 보낸 슬픔의 제품이길래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이길래
사랑을 잃고 두 눈이 멀어
겨우 밥이나 먹고 사는 나에게 배송돼 왔나
포장된 슬픔은 나를 슬프게 한다
살아갈 날보다 죽어갈 날이 더 많은 나에게
택배로 온 슬픔이여
슬픔의 포장지를 스스로 벗고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나에게만은
슬픔의 진실된 얼굴을 보여다오
마지막 한방울 눈물이 남을 때까지
얼어붙은 슬픔을 택배로 보내고
누가 저 눈길 위에서 울고 있는지
그를 찾아 눈길을 걸어가야 한다
―시집『슬픔이 택배로 왔다(창비, 2022)
'남의 글 -좋은 시 문학상 건강 여행 뉴스 신문 기사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이프핵...손가락은 당신의 특성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떠한 손가락을 가지고 있나요? (0) | 2023.09.05 |
---|---|
나는 슬픔을 독학했다 /김대호 (0) | 2023.09.02 |
폐지라는 이름 /김영희 (0) | 2023.08.31 |
구르는 돌은 둥글다 / 천양희 (0) | 2023.08.31 |
내 여덟 살의 한 페이지 ―가족도 /성국희 (0) | 2023.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