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과 사진/시 읽기

봄 /이성부

흰구름과 함께 2023. 3. 29. 08:49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미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누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일간『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50]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시선집『자연 속에서 읽는 한 편의 시 05』(국립공원, 2007) 

 

 

  산수유, 새앙나무, 벚나무, 살구나무, 진달래, 매화는 이미 꽃을 피웠고 모과나무, 조팝나무, 수수꽃다리는 잎을 뾰죽이 내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꽃인 무궁화, 궁중의 꽃이라는 능소화, 참나무, 감나무, 단풍나무는 다급한 바람이 사연을 전해주어도 여전히 혼곤한 잠에서 깨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얼음이 두껍게 얼어도 오는 봄을 늦출 수만 있을 뿐 막을 수는 없습니다.  어디선가 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봄은 돌아와 있을 것입니다. 산수유, 생강나무, 진달래가 이기고 돌아왔듯이, 모과나무, 라일락, 조팝나무가 이기고 돌아오고 있듯이, 무궁화, 능소화, 단풍나무, 감나무 그들도 반드시 이기고 돌아올 것입니다. 

 

  모두가 돌아오는 봄, 그러나 이 봄을 노래한 시인은 한 번 가시더니 돌아오지를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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