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슬픔이 제비꽃을 낳았나
곽도경
누가
눈물 떨구어
흙 속에 묻었나
누가
그 슬픔
빠져나오지 못하게
시멘트를 덮었나
단단한 바닥
틈서리 밀어내며 올라온
눈물 그렁그렁한
그 아이
ㅡ시화집『오월의 바람』(두엄, 2020)
세상에 진달래꽃 밖에 없는 줄 알다가 등산을 시작하고부터 제일 먼저 관심을 가진 꽃이 제비꽃이었습니다. 제비꽃도 보라색만 있는 줄 알았는데 북한산을 등산하다가 노랑꽃이 모다기모다기 노랑나비처럼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반해서 사진을 찍기 사작했습니다. 노랑제비꽃이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그저 노랑제비꽃도 있구나 싶었는데 흰꽃이 핀 제비꽃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제비꽃이 무려 60여종이 넘고 지금도 계속해서 잡종이 생겨나고 있을 거라고 합니다. 보라색 외 처음 본 노랑제비꽃을 비롯하여 호제비꽃, 흰제비꽃, 흰젖제비꽃, 흰털제비꽃, 둥근털제비꽃, 잔털제비꽃, 왜제비꽃, 금강제비꽃, 뫼제비꽃, 민둥뫼제비꽃, 서울제비꽃, 졸방제비꽃, 털제비꽃, 자줏잎제비꽃, 엷은잎제비꽃, 콩제비꽃, 줄민둥뫼제비꽃 잎이 노루발풀처럼 예쁜 알록제비꽃, 잎 모양이 고깔을 닮아 고깔제비꽃, 남산에서 발견된 남산제비꽃, 태백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지명 이름을 딴 태백제비꽃, 이파리가 단풍잎을 닮은 단풍제비꽃, 북유럽이 원산지라는 삼색제비꽃(팬지) 미국 제비꽃이라는 종지나물 등...
만나지 못한 제비꽃도 많지만 이름을 열거한 제비꽃들 내가 사진을 찍어놓고도 솔직히 다시 만나면 이름을 제대로 불러줄 수 없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등산을 하는 초봄 연둣빛 이파리들이 산야를 물들기 전 제비꽃을 만날 때마다 반가워서 인사를 하고 지나 갑니다. 그래서 제비꽃 시를 몇 편 쓰기도 했지만 좋은 시를 쓰지 못해 제비꽃에게 미안하기도 하기도 하고요.
제비꽃 시는 많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흔드는 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여기 곽도경 시인의 마음을 뒤흔드는 제비꽃 시 한 편을 봅니다. ‘어느 슬픔이 제비꽃을 낳았나’ 제목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올 봄에도 집 근처 콘크리트 바닥에서 보라색 꽃을 멋지게 피운 아이를 만나 즐거웠는데 이 시를 만나 다시 한 번 그 제비꽃 생각이 났습니다.
누가/눈물 떨구어/흙 속에 묻었나//누가/그 슬픔/빠져나오지 못하게/시멘트를 덮었나
누가 눈물을 떨구어 흙 속에 그 슬픔 빠져나오지 못하게 시멘트로 덮어놓았을까요. 이런 시 한 편을 읽노라면 그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백 번 천 번 생태계가 어쩌고 자연이 어떻고 시비를 걸면 무엇하리오, 이 한 편의 시가 모든 것을 다 말해주고 있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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