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과 사진/시 읽기

고양이의 방 /이은경

흰구름과 함께 2023. 3. 17. 10:25

<사람이 버린 도봉산 유랑 고양이>

 

고양이의 방

 

이은경

 

 

그 방에는 밖이 궁금한 고양이가 산다

 

털이 부드러워 공기로 떠다니는 위험한 고양이

목소리는 너무 작아 목울대에 멈춰있는 치즈 빛깔

 

소유할 수 없는 그리움의 고양이 한 마리

모래를 만나면 영역을 표시하는

사막에서 쫓겨난, 사막을 그리워하는 종족

 

별빛 내리는 창가를 보며 높은 곳만 오르는 습성

창을 열면 까마득한 허공

문밖이 그립다고 뛰어내릴 수도 없는데

 

오직 혼자만의 세상이 당연한 고양이의 고립

어제도 오늘인, 오늘도 내일인 고양이의 숨소리

방황이 두려운 길고양이는 길들여진 유전자를 숨기고

 

날카로운 발톱을 거세하고 들판의 자유도 감금한

깊은 우물처럼 조용한 그 방에서

사각사각 들리는 저 소리는 자라나는 야성인가

 

오늘 밤 탈출보다 푸른 언덕을 그리워하며

어둠을 엿보는 한 마리 고양이

고양이가 궁금하여 그 방을 살그머니 흔들어 본다

 

무슨 소리일까, 목젖이 보일까 궁금한데

밤이면 불 켜진 놀이터가 보이는 그 방에는

먹이를 잊어버리고 어스렁거리는 성자가 산다

 

 

 

⸺시집『고양이의 방』(그루, 2021)

 

 

  꼴에 시인이랍시고 더러 시집을 보내주는 시인들이 계시는데 꼴란 시인에게 시집을 보내주시는 시인님들의 성의가 고마워서 시 읽기나마 한 편씩 써서 마음의 짐을 덜고자 하고 있는데 이은경 시인의 시집은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시하늘시인선 제4호로 2021년에 출간된 시집이다. 모르고 있었던 것은 겉봉투 주소에 김석근 詩하늘 주소로 와서 그 속에 계간 詩하늘 들어 있는 줄 알고 봉투를 뜯지도 않고 그냥 두었던 모양이다.

 

  며칠 전 어떤 시가 생각나서 시집을 찾다가 보니 봉투째 뜯지도 않는 詩하늘이 있어 계간 詩하늘이 들어있는 줄 알고 뜯었더니 이은경 시인의 시집이 나왔다. 언제 보내온 것이지도 모르지만 늦게나마 시 한 편을 찾아서 읽어본다.

 

  이 시집에는 고양이 시가 몇 편 보이는데 고양이를 모르고 고양이 시를 쓸 수 없듯이 아마도 시인은 고양이를 좋아하는가 보다 생각하면서 표제시 “고양이 방“ 시를 읽어본다. 이 시는 시집이 나오기 전 계간 詩하늘 2021년 봄호에 발표되어 읽어본 기억이 있는데 계간 詩하늘 2022년 가을호에 <내 시집을 말한다> 실린 글에 보면 고양이와 인연이 된 사연이 나온다.

 

  시인은 고양이를 키워본 적도 없고 키울 생각도 안 했는데 서울에서 따로 살던 따님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데리고 있던 유기묘를 집으로 데려왔다고 왔다.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집 안에서 몇 마리도 키우면서 알뜰살뜰 보살피지만 반려견, 반려묘를 시답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은 한 공간에 생활하는 것조차 싫어한다.

 

  시 구절에서도 보이듯이 먹이고 똥 치우고 뒷설거지도 걱정이지만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털이 날릴까 걱정이다. 그러나 어쩌랴, 부모 이기는 자식 없다고 이미 정이 들어 다시 유기묘를 할 수도 없어 동거하기로 결정한다.

 

  개보다 고양이에 대한 편견이야 나도 있었다. 편견은 어릴 때 공포영화에서 나온 사악한 고양이 이미지가 한몫한 것도 있지만 개를 키우면 꼬리 흔들면 반겨주기나 하지 고양이는 도도하게 영역만 사수하며 주인이 들어오던가 말던가 신경도 안 쓰고 언제나 고독한 영웅처럼 사색에만 잠겨 있고 또 똥 오줌을 가리지도 못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출근하거나 외출할 때 따라나서려고 하고 짖기도 해 주위에 민폐가 되는 개보다 고양이는 정숙하며 조용해 현대 도시 홀로족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서서히 반려견들의 지위까지 넘보고 있는데 시인 역시 어쩌다 고양이와 한 공간에 있다 보니 가끔은 고양이가 무얼할까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다.

 

  시인은 뜻하지 않게 고양이를 통해서 이 세상에는 각자의 방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기서 말하는 방이란 공간을 지칭하는 방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어디든 소통의 방이 있고 시인에게 고양이를 통해 소통의 방이 생긴 것이다. 길이 막히면 바람도 드나들 수 없는 것처럼 이 세상 소통보다 중요한 방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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