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는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소리 통곡 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 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시집『타는 목마름으로』(창작과비평사, 1982)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51』(조선일보 연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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