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과 사진/내 시 - 내 시조 15

광속구 ―2020~2021 봄

광속구 ―2020~2021 봄 정호순 새순이 움트기도 전 새봄은 몹쓸 꿈으로 지구촌을 덮쳐 왔다 정체불명의 미사일 삽시간에 대한민국 세계 곳곳, 지구촌을 점령했다 어느 전쟁이 이보다 속전속결이었던가 병사의 군홧발로는 밟을 수 없는 속사포 총알보다 빠른 광속으로 지구의 한 도시 도시를 농무처럼 장악하기 시작했다 냄새도 형태도 없는, 맛도 생각도 이데올로기 이념도 없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 저격과 무차별 포격만 있을 뿐 폐가의 뜬소문처럼 괴담이 흉흉하다 만지지 마라, 붙지 마라 누구도 어느 곳도 안전지대가 없는 너도나도 표적이 되고 과녁이 될 수 있는 지금 단순 타박상도 한 번 맞으면 족히 보름을 간다는 저 괴물 투수의 광속구 3루도 2루도 1루도 피난처가 될 수 없는, 홈으로 도루하는 포수의 마지노선..

소방관을 위하여―평택 물류 창고화재로 순직한 3명의 소방관을 기리며

소방관을 위하여 ―평택 물류 창고화재로 순직한 3명의 소방관을 기리며 정호순 봉사라는 이름을 섬기며 살았나이다 불이라는 이름을 새기며 살았나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자 화마로 달려드는 우리는 누군가의 귀하디 귀한 자식이며 누구의 자상한 아버지요 띠앗의 형제이며 퇴근하면 만나는 평범한 이웃이며 친구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저에게 두려움을 없게 해주시고 화구로 뛰어드는 저에게 한치의 망설임이 없도록 용기를 주옵소서 화재현장의 희미한 소리라도 들을 수 있도록 예민한 청각을 주시옵고 어둠 속에서도 톺아볼 수 있는 밝은 눈을 주시옵소서 불길을 잡으려고 화마에 맞서는 저에게 무모함이 아니란 걸 깨닫게 하옵시고 소방관이라는 그 소중한 이름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하냥 톺아보게 하옵..

북한산 연가(戀歌) 1

북한산 연가(戀歌) 1 정호순 1, ―백운대 지난밤 비바람 몹시 불고 천둥 번개 요란했는데 아무 탈 없이 잘 있는지요 비 내리는 지지난 봄엔 진달래능선으로 올랐다가 지난가을은 단풍 고운 하루재 고갯길로 올랐다가 눈 내리는 오늘은 북한산성 대서문 골짜기로 당신을 뵈러 갑니다 풍경에 들면 풍경의 모습이 보이지 않듯 산에 들면 산의 모습을 볼 수 없어 늘 내 속에 있는 당신 당신 품에 안기면 당신이 보이질 아니하고 당신 품에 있어도 당신을 못 찾아 산을 올라도 산을 내려와도 나는 늘 당신이 그립습니다 2. ―인수봉 당신은 내게 있어 언제나 멀고 먼 당신이지요 그러나 당신이 늘 거기에 그대로 계시기에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3. ―만경봉 아름다워라 만경대! 무슨 말 더 필요할까..

가을의 길목에서

가을의 길목에서 정호순 가을날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시를 써서 야금야금 땅에 묻는 사람이 있었네 아는 이 알아주는 이 없이 아무도 모르게 홀로 쓰고 지웠네 자신의 블로그 프로필에 "바람도 없이 떨어지는 꽃잎같이 없어질 글을 쓰는 여자" 라고 자괴감이 우수에 젖어 늦은비 내리는데 병원에 입원한다는 짧은 쪽지 한 장 달랑 던지고 만추의 낙엽처럼 홀연히 사라진 사람 바람처럼 눈처럼 시라는 이름으로 몇 번의 쪽지를 주고받은 색깔도 음색도 알 수 없는 사람 떨어진 꽃잎처럼 땅에 스며든 빗물처럼 멈춰진 공간 속에 정지되어있는 사람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또 한 해가 지나가는 이 가을 문득 생각나 탐문을 하기도 했었는데 지리산 골짝 어디쯤 요양중이라 했는데 홀로 낯선 곳 먼 여행을 떠났다 온 것처럼 아무 일 없었던 ..

주머니 속의 행복 /연서(戀書)

시하늘 100호 원고 시 - 2편 1 주머니 속의 행복 ―시하늘 통권 100호 기념 2 시하늘 ―연서(戀書) 수필 - 1편 1 내게 있어 시하늘은 이름 – 정호순 ----------------------------- 주머니 속의 행복 ―시하늘 통권 100호 기념 정호순 언제 어디서 우리가 만났던가 우리 모두는 바람이었고 들풀이었고 목마른 가뭄이었지 당신과 내가 만나 꿈을 만들고 꿈을 만나 바람을 만들고 염원을 만들고 노래를 만들었지 *주머니 속의 행복을 만들었지 사랑이 아니던가 ―세상에 거저 주는 사랑은 없지 믿음이 아니던가 ―저절로 생기는 믿음은 없지 인연이 아니던가 ―그늘도 나무가 만든 인연이지 그 사랑 그 믿음 그 인연들 매듭 엮듯 고이 이어 가리라 어서 오시라, 미지의 詩友여 우리 함께 만들어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