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4 4

바람 시 속에서 -정한모

바람 속에서 정한모  1. 내 가슴 위에 바람은발기발기 찢어진기폭어두운 산정에서하늘 높은 곳에서비정하게 휘날리다가절규하다가지금은그 남루의 자락으로땅을 쓸며경사진 나의 밤을거슬러 오른다소리는창밖을지나는데그 허허한 자락은 때묻은이불이 되어내 가슴위에싸늘히앉힌다 2. 남루한 기폭  바람은 산모퉁이 우물 속 잔잔한 수면에 서린 아침 안개를 걷어 올리면서 일어났을 것이다  대숲에 깃드는 마지막 한 마리 참새의 깃을 따라 잠들고 새벽이슬 잠 포근한 아가의 가는 숨결 위에 첫마디 입을 여는 참새소리 같은 청청한 것으로 하여 깨어났을 것이다  처마 밑에서 제비의 비상처럼 날아온 날신한 놈과 숲 속에서 빠져나온 다람쥐 같은 재빠른 놈과 깊은 산골짝 동굴에서 부스스 몸을 털고 일어나온 짐승 같은 놈들이 웅성웅성 모여서 그..

바람 시 모음 -정한모 정호승 조혜경 마경덕 최승자 마종기 이은규...

바람 시 모음 -정한모 정호승 조혜경 마경덕 최승자 마종기 이은규...  바람속에서 - 정한모바람의 묵비 - 정호승바람의 취향 - 조햬경바람의 性別 - 마경덕바람의 유전자를 보았다 - 마경덕바람의 간이역 - 고증식바람의 길 - 민영바람의 각도 - 도복희오래된 바람의 부족 - 손미바람의 바느질 - 김승희바람의 구문론 - 이종섶바람의 정거장 - 강연호바람의 편지 ―지리산 - 최승자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 신용목바람의 말 - 마종기 바람의 등을 보았다 -김윤배 바람의 후예 - 김나영 바람의 냄새 - 윤의섭바람의 뼈 - 윤의섭 바람의 경전 - 김해자 바람의 입 - 장혜랑 바람의 증언 - 구석본 바람의 뼈 - 천수호 바람의 호출 정우영 바람의 시 - 신달자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 김지혜 바람의 발자국- 김..

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 /천수호 -내가 아버지의 구근식물이었을 때 / 신정민

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 천수호   아버지는 다섯 딸 중나를 먼저 지우셨다  아버지께 나는 이름도 못 익힌 산열매  대충 보고 지나칠 때도 있었고아주 유심히 들여다 볼 때도 있었다  지나칠 때보다유심히 눌러볼 때 더 붉은 피가 났다  씨가 굵은 열매처럼 허연 고름을 불룩 터뜨리며아버지보다 내가 곱절 아팠다 아버지의 실실한 미소는 행복해 보였지만아버지의 파란 동공 속에서 나는 파르르 떠는 첫 연인  내게 전에 없이 따뜻한 손 내밀며당신, 이제 당신 집으로 돌아가요, 라고 짧게 결별을 알릴 때  나는 가장 쓸쓸한 애인이 되어  내가 딸이었을 때의 미소를 버리고아버지 연인이었던 눈길로  아버지 마지막 손을 놓는다   ―시집『우울은 허밍』(문학동네, 2014) ------------- 내가 아버지의 구근식..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 나희덕 - 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이규리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나희덕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꽃 지기 전에 놀러 와.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나는 끝내 놀러 가지 못했다.해 저문 겨울 날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나 왔어.문을 열고 들어서면그는 못들은 척 나오지 않고여봐, 어서 나와.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짐짓 큰 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드리면조등(弔燈) 하나꽃이 질 듯 꽃이 질 듯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그가 너무 일찍 피워 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시집『어두워진다는 것』(창비, 2009)--------------------------------------꽃피는 날 전화를 하겠다고 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