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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 /이재무

감자꽃 이재무 차라리 피지나 말걸 감자꽃 꽃피어 더욱 서러운 女子 자주색 고름 물어뜯으며 눈으로 웃고 마음으론 울고 있구나 향기는, 저 건너 마을 장다리꽃 만나고 온 건달 같은 바람에게 다 앗겨버리고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비탈 오지에 서서 해종일 누구를 기다리는가 세상의 모든 꽃들 생산에 저리 분주하고 눈부신 생의 환희 앓고 있는데 불임의 女子, 내 길고긴 여정의 모퉁이에서 때묻은 발목 잡고 퍼런 젊음이 분하고 억울해서 우는 내 女子, 노을 속 찬란한 비애여 차라리 피지나 말걸, 감자꽃 꽃피어 더욱 서러운 女子 -시집『위대한 식사』(세계사. 2002) 감자는 밀과 벼,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작물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약 7천 년 전 페루 남부에서 재배를 시작했고 남미 원주민들에게 주식이었다고 한..

소주병 /공광규

소주병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ㅡ시집『소주병』(실천문학사, 2004) -------------- 다리를 다쳐 거의 2년 정도 산을 못 다니다가 2년을 또 혼자서 외롭게 홀로 산을 다닌 적이 있었다. 혼자 산행을 하다보면 의외로 혼자 산행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는데 혼자 산행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우선 홀가분하다. 약속도 시간제약도 없으니 코스 변경도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발길 닿는 대로 갈 수도 있다. 또 하나 좋은 점은 나뭇잎 흔들리는 바람 소리, 여러 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