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과 사진/시 읽기

감자꽃 /이재무

흰구름과 함께 2024. 4. 3. 10:58

감자꽃

 

이재무

 

 

차라리 피지나 말걸 감자꽃

꽃피어 더욱 서러운 女子

자주색 고름 물어뜯으며 눈으로 웃고

마음으론 울고 있구나 향기는,

저 건너 마을 장다리꽃 만나고 온

건달 같은 바람에게 다 앗겨버리고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비탈

오지에 서서 해종일 누구를 기다리는가

세상의 모든 꽃들 생산에 저리 분주하고

눈부신 생의 환희 앓고 있는데

불임의 女子, 내 길고긴 여정의

모퉁이에서 때묻은 발목 잡고

퍼런 젊음이 분하고 억울해서 우는

 女子, 노을 속 찬란한 비애여

차라리 피지나 말걸, 감자꽃

꽃피어 더욱 서러운 女子

 

 

 

-시집위대한 식사』(세계사. 2002)

 

 

 

  감자는 밀과 벼,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작물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7천 년 전 페루 남부에서 재배를 시작했고 남미 원주민들에게 주식이었다고 한다. 그런 감자가 유럽으로 건너갔을 때에는 남미 원주민들 미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라는 편견이 있어 널리 보급되지를 못했다고 한다. 감자 생김새 또한 울퉁불퉁한 것이 나병을 일으킨다는 말이 퍼지면서 악마의 식물이라 하여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감자가 귀족들의 정원에서 사랑받는 작물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최음제라는 잘못된 오해로 비롯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감자는 구근식물로서 초기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지만 유럽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먹을 것이 부족할 때 식량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바로 이 감자였다고 한다. 감자는 구황식물로 큰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가뭄으로 기근이 들 때도 사람들을 굶어죽지 않게 하고 18세기 이후 지구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한 것도 이 감자의 힘이라고 한다.

 

  감자의 종류는 많지만 주로 흰감자, 홍감자, 보라(자주)감자로 분류한다고 한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난 나는 창문만 열면 보이는 텃밭에서 늘 아버지가 심은 감자를 보면서 자랐다. 요즘은 흰감자가 대부분이지만 그때만 해도 자주색 감자가 많았다. 흰감자보다 맛은 아렸지만 꽃은 보라색 꽃이 피어 보기가 좋았다.

 

   강원도 감자바위라는 말처럼 감자꽃은 많이 보았다. 그런데 올해 감자 열매를 처음 보았다. 저 뿐 아니라 아마도 감자 열매를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가는 길목 동네 화단에서 감자 흰꽃이 핀 것을 보았는데 그 감자꽃에 덜 익은 토마토 같은 녹색이 달려 있었다. 방울토마토인가 싶어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아니 분명 감자줄기에 달려 있었다.

 

    많이 다들 아는 것처럼 감자는 씨앗을 심지 않고 감자 눈이라는 곳을 칼로 도려내어 씨감자를 재배를 하는데 감자 열매라니...생전 처음 보는 감자 열매라 신기하기도 하거니와 꽃이 피면 열매가 맺는다는 단순 진리도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속에 무려 100~300개의 씨가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럼 왜 감자는 씨로 파종을 하지 않고 씨감자를 사용할까...씨감자를 심으면 종자 크기도 커지고 크기도 균일해져 수확량이 많은데 씨로 뿌리면 콩알부터 엄지손톱 정도로 작은데다 크기도 천차만별이라 상품성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꽃을 피워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감자꽃은 슬프다. 이재무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임의 여자 석녀이기 때문이다. 이 시를 처음 안 것은 아주 오래전 인터넷 이재무 시인의 동영상 강의를 들으면서 예제 시로 소개하는 데서 처음 알았다. 지금은 인문학 사이트 아트앤스터디이지만 그 때는 이름이 달라던 것 같다.

 

   아무튼 지금도 이재무 시인의 동영상 강좌를 비롯해 여러 시인들의 강좌가 등록되어 있는데 그때 이재무 시인의 시 동영상 강의를 들으면서 시의 기초와 시는 발견이라는 것과 낯선 사물의 이질적인 비유를 비롯해서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 최상급의 언어 등 시에 대해 많을 것을 배웠다.

 

      이 감자 시 또한 감자꽃을 불임의 여자로 본 데서 시의 잉태가 시작된 것이다. 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다른 사물을 대상으로 비유로 쓸 때 시를 읽는 맛이 더욱 좋아진다. 좋은 시는 이렇게 발견의 미학이 있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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