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감태준
바람에 몇 번 뒤집힌 새는
바람 밑에서 놀고
겨울이 오고
겨울 뒤에서 더 큰 겨울이 오고 있었다
“한번……”
우리 사는 바닷가 둥지를 돌아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고향을 바꿔 보자”
내가 아직 모르는 길 앞에서는
달려갈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때,
아버지는 바람에 묻혀
날로 조그맣게 멀어져 가고, 멀어져 가는 아버지를 따라
우리는 온몸에 날개를 달고
날개 끝에 무거운 이별을 달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환한 달빛 속
첫눈이 와서 하얗게 누워 있는 들판을 가로질러
내 마음의 한가운데
아직 누구도 날아가지 않은 하늘을 가로질러
우리는 어느새
먹물 속을 날고 있었다.
“조심해라, 얘야”
앞에 가던 아버지가 먼저 발을 헛딛었다
발 헛딛은 자리,
서울이었다
―시집「마음이 불어가는 쪽」(현대문학사, 1987)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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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K1 TV 티브에서 환경스페셜 자연다큐멘터리 프로를 본 적이 있었다. 쇠닭과 물닭은 같은 자연 조건 속에서 둥지를 튼다고 하는데 영역이 겹치다보니 둥지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몸집이 작은 쇠닭이 경쟁에서 밀려 덩치가 큰 물닭에게 쫓기고 있었는데 물닭이든 쇠닭이든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자 애쓰는 것은 천적으로부터의 보호와 먹이가 풍부한 곳에서 새끼를 안전하게 끝까지 잘 키워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철새 역시 수백리 수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고된 날갯짓으로 향하는 곳은 보다 풍부한 먹이로 좋은 환경 속에서 새끼를 키우기 위해서이다. 시 속의 아빠 철새도 몇 번의 사업 실패 끝에 더 나은 곳을 찾아서 가족을 데리고 이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예상치 않게 발을 헛딛은 곳이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다.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고 단단히 마음 준비를 하고 내려앉아도 서울이라는 거대한 빌딩 숲에서 적당한 둥지를 틀기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만 발을 헛딛었으니 적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약육강식의 적자생존이 정글의 법칙이라고 하지만 햇볕의 경쟁에서 밀려난 키 작은 나무들의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도시의 철새들은 보다 나은 집이 아니라 더 싼 집을 찾아 변두리에서 더 변두리로 밀려나고 중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자식만큼은 교육과 환경이 좋은 여건 속에서 공부를 시키고 훌륭하게 자라기를 희망하지만 거대한 도시에서 생존경쟁에 밀려 이동하는 철새들의 날갯짓은 고달프기만 하다. (2008년 10월 2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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