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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명 -자화상 /사슴

흰구름과 함께 2023. 8. 4. 18:29

자화상 /노천명

 

오 저 일촌 오푼 키에 이 촌이 부족한 불만이 있다. 부얼부얼한 맛은 전혀

잊어버린 얼굴이다. 몹시 차 보여서 좀체로 가까이하기 어려워한다.

그린 듯 숱한 눈썹도 큼직한 눈에는 어울리는 듯도 싶다마는……

전 시대 같으면 환영을 받았을 삼단 같은 머리는 클럼지한 손에 예술품답지

않게 얹혀져 가날픈 몸에 무게를 준다. 조그마한 거리낌에도 밤잠을 못 자고

괴로워하는 성격은 살이 머물지 못하게 학대를 했을 게다.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내뿜기보다 흔히는 혼자 삼켜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 세 온스의 ''만 더 있어도 무척 생색나게 내 얼굴에 쓸 데가 있는 것을

잘 알 것만 무디지 못한 성격과는 타협하기가 어렵다.

처신을 하는 데는 산도야지처럼 대담하지 못하고 조그만 유언비어에도 비겁

하게 삼간다 대()처럼 꺾어는질망정

구리()처럼 휘어지며 구부러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가끔 자신을 괴롭힌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문학과지성사, 2007)

 

 

사슴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족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문학과지성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