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노천명
오 저 일촌 오푼 키에 이 촌이 부족한 불만이 있다. 부얼부얼한 맛은 전혀
잊어버린 얼굴이다. 몹시 차 보여서 좀체로 가까이하기 어려워한다.
그린 듯 숱한 눈썹도 큼직한 눈에는 어울리는 듯도 싶다마는……
전 시대 같으면 환영을 받았을 삼단 같은 머리는 클럼지한 손에 예술품답지
않게 얹혀져 가날픈 몸에 무게를 준다. 조그마한 거리낌에도 밤잠을 못 자고
괴로워하는 성격은 살이 머물지 못하게 학대를 했을 게다.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내뿜기보다 흔히는 혼자 삼켜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 세 온스의 '살'만 더 있어도 무척 생색나게 내 얼굴에 쓸 데가 있는 것을
잘 알 것만 무디지 못한 성격과는 타협하기가 어렵다.
처신을 하는 데는 산도야지처럼 대담하지 못하고 조그만 유언비어에도 비겁
하게 삼간다 대(竹)처럼 꺾어는질망정
구리(銅)처럼 휘어지며 구부러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가끔 자신을 괴롭힌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사슴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족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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