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과 사진/시 읽기

디오게네스의 세상 /이석구

흰구름과 함께 2023. 3. 15. 09:07

디오게네스의 세상

 

이석구

 

 

알렉산드로스여

당신이 천하를 얻었다 한들

자족의 디오게네스 삶만큼 행복했겠소

 

비릿한 피 냄새 풍기며

제 것도 아닌 것을 마구 빼앗고

그래도 성에 차지 않던 당신의 세상은

끝이 닿지 않는 부처님 손바닥이었던 것을

 

무력으로

정복은 왜 하는 것인지

 

돕는 공존의 세상을 꿈꾸며

사람마다

하나의 세상을 가슴에 가꾸거늘

 

어찌 그 세상이

피 냄새 가득한 전쟁터겠소

 

이미

한 줄기 빛으로도 충분한

그런 자족을 품은 순수한 마음

 

가진 것에 족하고

나눌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할 평화

소박한 그

디오게네스의 세상 아니겠소

 

 

 

―시집『흐뭇한 삶』 (천년의 시작, 2022)

 

 

   아주 오래전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자고 눈을 뜬 적이 있었다. 샘터, 미소 유머어 같은 생활의 지혜나 경구, 삶의 웃음과 여유를 주는 작은 잡지에서부터 수필 시대를 열었다는 화가 천경자의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도 읽었고 문학지로는 문학사상, 현대시도 있었다. 펄벅의 대지도 있었고 엽합군 입장에서 쓴 전쟁 장편소설 처칠이 쓴 제2차대전을 비롯하여 일본 입장에서 일본은 왜 뻔히 질 줄 알면서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을 벌여야만 했는지를 반대급부로 대변해 놓은 것 같은 '태평양 전쟁'이라는 제목의 책도 있었고 김기팔이 쓴 정치 소설 제1공화국도 있었다.

 

   삼국지는 번역한 작가 따라 문장을 풀어내는 맛이 달라 이 사람, 저 사람 몇 사람 것을 사다 읽었는데 이 외에도 그 당시 아는 사람들을 상대로 유행하던 할부로 사다 놓은 많은 책들이 읽어주기를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식이 스펀지처럼 물을 빨아들이는 한창 배고플 때였다. 그때 샘터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알랜산더와 디오게너스의 대화를 다룬 글이 있었다.

 

   알렉산더는 전쟁의 영웅이었다. 몽고의 징크스칸, 프랑스의 나플레옹과 같이 전쟁의 3대 영웅?이 아닌가 싶은데 전쟁의 영웅 한 사람의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던가. 나중에야 알았지만 지구의 큰 땅을 차지했던 술레이만이라는 터키의 왕도 있었다. 어쨌든 알랙산더가 영토를 확장하면서 그리스를 정복하고 페르시아를 치러 가던 중 일부러 시간을 내어 디오게네스를 만나러 갔다.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동시대 사람인 디오게네스는 당시 추앙받던 많은 소피스트와 철학자에게 거침없는 비판으로 주목을 받던 사람이었다.

 

   시는 정쟁의 영웅 알랙산더와 디오게네스의 대화 속에 나오는 교훈을 그리고 있는데 알랙산터가 추구하는 세상이 아무리 크고 원대하다고 해도 디오게네스에게는 알랙산더가 몸으로 막아 생긴 그림자로 따스한 햇볕을 받지 못하는 것이 어떤 욕망보다도 더 큰 것이다.

 

   건강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는 그 말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절실하게 깨달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여기저기서 부고장이 날아오고 몇 년 전만 해도 멀쩡하던 무릎이 쑤셔오고 자고 나면 이유 없이 허리 어깨가 아프기도 하다. 구름 속에 가려 있다가 나온 햇님이 뿌려주는 햇살 한 줄기, 그 햇볕이 얼마나 필요한지 디오게네스가 이미 수천 년 전에 넌지시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22.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