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천강문학상 시부문 대상 수상자의 작품 1>
나무들은 그 몸속에 사다리를 갖고 있다
배종영
그동안 마음 주었던 나무들이
눈앞에서 자라는 순간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나무들은 겉으로는 그냥 쑥쑥 자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몸속 물관의 기둥에 비슴듬히 사다리를 받쳐두고
가지의 저 끝 연둣빛 햇순들을 차례로 올려보내는 것이다.
그 햇순을 흔드는 높은 바람도 사실은
나무 속 사다리를 얻어 타고 올라간 것이다.
심지어 꽃들도 씨앗들도 살금살금
사다리를 기어오른 것들이다.
특이한 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오른다는 것이며
오르고 나면 사다리를 치워버린다는 것이다.
나무들이 사방에 가지를 걸쳐두는 것도
바쁜 나무의 속을 배려해 겉에다
그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봐라, 내 눈에 들키고 만 낙화하는 이파리들은
사다리가 없어 뛰어내리는 중이다.
열매들이 툭툭 떨어지는 것도
물방울의 본성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무들은
저 푸릇한 꼭대기가 가장 깊은 수심인 것이다.
아찔한 곳이란 가끔 위아래를 바꾼다.
지는 것들은 눈에 보이고
피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틈인 것이다.
―시선집『제12회 천강문학상 수상작품집』(경남,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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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순 뻥인데요. 뻥인데 이게 또 말이 되거든요. 시는 사실이 아니고 진실이라고 합니다. 시가 진실인 예로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을 시를 예시로 많이 드는데 자화상에 나오는 아버지는 종이 아니라 시인의 아버지는 마름이었다고 합니다. 마름은 지주를 대신하여 소작인을 관리하는 사람인데 따지면 마름은 종이 아니라는 거지요.
시가 사실이면 재미가 반감되는데 나무 속에 물관부가 들어 있는 것은 과학이고 사실이기에 과학은 시적 매력을 떨어뜨립니다. 그런데 나무 속에 사다리가 들어 있다니, 사다리가 있어 이 사다리를 타고 잎 틔우고 꽃을 피운다니? 이 황당한 거짓말이 그럴싸하게 들리고 시를 맛깔나게 하고 시를 단번에 진실로 만들어 버립니다.
어떤가요. 이런 시 써보고 싶지 않나요. 좋은 시의 텍스트는 시 강좌에 있는 것이 아니고 좋은 시집에 있다고 합니다. 교수나 시인들 강좌 듣는다고 해서 시가 쓰여지던가요. 다만 거기서 시를 쓰는 방법, 기술을 배울 뿐이죠.
시는 혼자서 쓰는 것이고 선자들은 이게 '시'다는 것을 시 쓰는 기술을 가르쳐 줄 뿐이죠. 시는 머리로 쓰는 기술이 아니라 가슴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없어 오프라인 시 강좌를 못 들어도 시는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것이죠.
좋은 시는 널려 있습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 장관이 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 고 했는데 이 말은 문화재를 알차게 보기 위해서는 사찰의 문살 하나를 보더라도 사전 지식이나 절의 유래 등을 알고 보면 더 흥미가 있고 문화 유산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인 것인데요. 이 말이 여기저기 인용이 되어 산도 그렇고 시도 그렇고 뭐든지 사전 지식을 가지고 알고 봐야 더 흥미가 있고 재미가 배가 된다는 것이죠.
등산의 묘미 또한 그 산의 전설과 어떤 봉우리, 어떤 바위의 유래를 알고 보면 등산하는 것이 단순히 운동 개념을 떠나 한결 더 풍부한 재미를 주듯이 마찬가지로 시도 쓰는 방법을 모른다면 어떻게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시는 쓰는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누구는 여백을 두고 행간의 의미를 찾으라 하고 또 누구는 디테일하게 쓰라고 합니다. 다 맞는 말인데요, 요는 어떤 시를 어떻게 쓰느냐 아닐까요. 좋은 시 널려 있습니다. 제 블로그만 해도 주워다 놓은 시 만 편도 더 올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지 않으면 목걸이가 될 수 없듯이 한 편의 시라도 써야 내 것이 되는 것이죠.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시의 효시라고 하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부터 80년대 90년대, 2022년 최근시까지 많은 시가 올려져 있는데 아무리 시가 많다고 해도 먹지 않으면 배가 부르지 않듯이 읽지 않으면 소용없지요.
그중 자기에게 맞는 시를 찾아서 읽으십시오. 음식도 사람마다 좋아하는 기호와 취향이 다르듯 시 역시 자신의 기호와 취향에 맞는 시를 찾으십시오. 좋은 시는 이렇게 써도 좋고 저렇게 써도 좋다고 합니다. 문학성 예술성 창의적이고 새롭고 낯선 시가 먼저 눈도장을 받기는 합니다만 상투적이고 통속적이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것이 대중적이듯이 좋은시는 내용이 감동적이거나 배움이 있거나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시도 좋은 시라고 합니다.
어떻게 쓰든 나쁜 시, 틀린 시는 없다고 합니다. 단지 다른 시가 있을 뿐이죠. 좋은 시, 너무 거창하게 생각지 마시고 사소한 일상이나 소소한 주변의 사물들에게 사랑으로 관심을 주고 귀를 기울이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게 되고 들리지 않던 소리도 들린다고 합니다.
남이 안 듣는 소리, 아니 들리는 소리도 예사롭지 않게 듣는 것이 시인의 귀라고 합니다. 이렇게 남이 안 보고 못 듣는 소리를 보고 듣다 보면 뜻하지 않게 좋은 시 한 편 ‘옛다 여깃다 너 가져라’ 하면서 선물로 주지 않을까요. 2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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