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 문답(山中 問答)
이 백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그대에게 묻노니 어이해 산에 사노.
웃고 대답 않으니 마음은 한가롭다.
복숭아꽃 시냇물에 아득히 흘러가니
정년 다른 천지라, 인간 세계 아니로다.
-김희보 엮음『世界의 名詩』(종로서적,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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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문답(山中問答)
조지훈
'새벽닭 울 때 들에 나가 일하고
달 비친 개울에 호미 씻고 돌아오는
그 맛을 자네 아능가'
'마당가 멍석자리 삽살개도 같이 앉아
저녁을 먹네
아무데나 누워서 드렁드렁 코를 골다가
심심하면 퉁소나 한 가락 부는
그런 멋을 자네가 아능가'
'구름 속에 들어가 아내랑 밭을 매면
늙은 아내도 이뻐 뵈네
비 온 뒤 앞개울 고기
아이들 데리고 낚는 맛을
자네 태고적 살림이라꼬 웃을라능가'
'큰일 한다고 고장 버리고 떠난 사람
잘되어 오는 놈 하나 없데
소원이 뭐가 있는고
해마다 해마다 시절이나 틀림없으라고
비는 것 뿐이제'
'마음 편케 살 수 있도록
그 사람들 나랏일이나 잘 하라꼬 하게
내사 다른 소원 아무것도 없네
자네 이 마음을 아능가'
노인은 눈을 감고 환하게 웃으며
막걸리 한 잔을 따뤄 주신다.
'예 이 맛은 알 만합니더'
청산 백운아
할말이 없다
-시집『여운』(일조각,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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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문답
이기철
산중에는 작위(爵位)보다
엽록이 앞선다
고인 물이 하류로 흐르지 않지만
광목필 같은 물은 어디로 갈 것인가
삼백 년 세월은 이 산의 깃을 흔들며 지나갔지만
기슭의 명아주 잎새 하나도 바꿔놓지 않았다
사천 지나 쌍계 마현
섬진강은 비단 필(匹)로
들 가운데 누워 있다
종일 일없는 너도밤나무를 쳐다보며
문턱에 걸터앉아 계곡물 붇는 것만 구경한다
물살은 서로 싸워도 둑을 넘지 않고
산봉은 손 헤지 않아도 해와 달을 제 등뒤로 넘겨 보낸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수자(修者)가 되는 길만이
유리의 길은 아니다
연꽃 위에 놓인 법구경 한 구절도
누가 공으로 내 마음의 쟁반에 갖다놓겠는가
서릿바람 속에 뼈로 설 수 있어야
마음의 유리를 찾을 수 있다
산은 언제나 나보다 높은 데 있고
물은 언제나 나무보다 낮은 데로 흘러간다
-시집『유리의 나날』(문학과지성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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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문학》2호(1934. 2) 수록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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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스프리 호수섬
예이츠
일어나 지금 가리, 이니스르리로 가리.
가지 얹고 진흙 발라 조그만 초가 지어,
아홉 이랑 콩밭 일구어, 꿀벌 치면서
벌들 잉잉 우는 숲에 나 홀로 살리.
거기 평화 깃들어, 고요히 날개 펴고,
귀뚜라미 우는 아침 놀 타고 평화는 오리.
밤중조차 환하고, 낮엔 보라빛 어리는 곳,
저녁에는 방울새 날개 소리 들리는 거기.
일어나 지금 가리, 밤에나 또 낮에나
호수물 찰랑이는 그윽한 소리 듣노니
맨길에서도, 회색 포장길에 선 동안에도
가슴에 사무치는 물결 소리 듣노라.
-김희보 엮음『世界의 名詩』(종로서적, 1987)
산중문답(山中問答)
민병찬
올랐다 내려올 산
기 쓰고 왜 오르냐
살다가 죽을 목숨
왜 사냐고 되물으니
엿듣던 양지꽃 하나
노오랗게 웃고 있네.
―민병찬 제3시조집『신백자리의 푸른 일기』(고요아침, 2011. 6)
―격월간『유심』(2011. 9-104)
전원송(田園訟)
주요한
전원으로 오게, 전원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을 가져 오나니.
익은 열매와 붉은 잎사귀―
가을의 풍성은 지금이 한창일세.
아아 도회의 핏줄 선 눈을 버리고
수구러진 어깨와 가쁜 호흡과
아우성치는 고독의 거리를 버리고
푸른 봉우리 솟아오른 전원으로 오게, 고게.
달이 서러운 밭도랑을 희게 비치고
얼어 붙은 강물과 다리와 어선 위에
눈은 내려서 녹고 또 꽃 필 적이
우리들의 깊이 또 고요히 묵상할 때일세.
전원으로 오게, 건강의 전원으로.
인공과 암흑과 시기와 잔혹의 도회
잠잔 줄 모르는 도회 달과 별을 향하여
어리석은 반항을 하는 도회를 떠나오게.
노래는 드을에 가득히 산에 울려나고
향기와 빛깔은 산에서 드을로 퍼져간다
아름다운 봄! 양지에 보드랍게 풀린
흙덩이를 껴안고 입맞추고 싶은 봄.
그러나, 보라 도회는 피 빠는 박쥐가 깃들인 곳
흉한 강철의 신 앞에 사람사람이
피와 살과 자녀까지 비쳐야 하는
도회는 문명의 막다른 골, 무덤.
전원으로! 여기 끊임없는 샘물이 솟네.
여기 영원한 새로움이 흘러나네.
더운 태양과 건강한 대지의
자라나는 여름의 전원으로!
아아, 그때에 새 예언자의 외치는 소리가
봉우리와 골짜기를 크게 울리리니
반역자가 인류의 유업을 차지하리니
위대한 리듬의 전원으로 오게, 오게.
(『불놀이』. 미래사. 1991)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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