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과 사진/시 읽기

지옥은 없다 /백무산

흰구름과 함께 2024. 8. 20. 09:37

지옥은 없다

 

백무산

 

 

고깃집 뒷마당은 도살장 앞마당이었다

고기 먹으러 갔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친구 따라갔다

구워먹는 데만 하루에 황소 서너 마리를 소비한다는

대형 고깃집 수백 명이 한꺼번에 파티를 열고

회식을 하고 건배를 하고 연중무휴

요란하고 벅적거리는 대궐 같은 집이다

 

그는 쇠를 자르고 기계를 분해하고

기름 먹이는 일을 하다 직장을 옮겨 우족을 자르고

뼈를 발라내고 피를 받아내는 일을 한다

소를 실은 차들과 고기를 실어 나르는

트럭들이 들락거리는 마당을 지나

 

전동문을 열고 들어서니 피를 뒤집어쓴

잘린 소 대가리가 거대한 탑을 이루고 있다

바닥은 피와 똥과 체액으로 질펀한 갯벌이다

더운 피의 증기가 뻑뻑한 한증막이다

하수구 냄새와 범벅이 된 살 비린내가 고체 같다

욕탕 같은 수조는 똥과 내장의 늪이다

 

뜯긴 살점이 사방에 튀고 벽은 온통 피 얼룩이다

컨베어 소리 기계톱 소리 갈고리 부딪는 소리

육절기 돌아가는 소리가 패널 벽에

왕왕 메아리 되어 울부짖는다

 

이곳에서 누군가는 지옥을 읽었다지만

지옥이 아니다

지옥과 닮지도 않았다

이곳은 천국의 부속건물이다

천국의 주방이다

 

우리가 괜찮은 노동을 하고

그럴듯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장만하는 곳이다

 

식당으로 돌아와 함께 떠들고 고기를 먹었다

맛이 있어서 불안했다

그러나 안도를 했다

지옥은 편입되고 없었다

 

 

 

월간유심(2015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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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나라인지는 잊어버렸지만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한 나라의 마을 축제를 보여주고 있었다. 축제의 날에 소를 사 놓으면 백정? 들이 칼까지 들고 와 마을을 돌면서 소를 잡아주었다. 그 집은 손님이 많이 오는지 소 세 마리를 사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소를 잡는 사람들이 마당을 들어오고 순서가 뒤로 미뤄진 다른 소에게는 도살 장면이 보이지 않게 한쪽으로 이동해 놓았다. 그러나 옮겨진 소도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불안한 눈망울 겁에 질려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시는 고기를 먹으러 갔다가 친구가 일하고 있는 도살장의 모습을 보게 된 장면들이 있는 그대로 날것으로 그려져 있다. 피와 똥과 체액으로 질펀한 갯벌 같은 바닥에 잘려진 소대가리가 탑처럼 쌓여 있는 것이 끔찍하기도 하다. 어떤 이에게는 지옥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지옥 같은 곳에서 화자의 친구처럼 어떤 사람들은 밥벌이를 하고 있다. 이런 곳이 누구에게는 소중한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면 지옥 같은 곳에서 먹는 고기가 맛이 있어서 불안한 맛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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