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과 사진/시 읽기

아라 연꽃 /신순말

흰구름과 함께 2024. 5. 28. 12:27

아라 연꽃

 

신순말

 

 

칠백 년 잠 속에서 씨앗이 꿈꾸었던 

 

세상의 하늘빛은 오늘과 같았을까 

 

기나긴 시간의 실타래 아라*에서 멈추고 

 

 

어제의 꿈을 건넌 꽃송이 눈을 뜨면 

 

단잠에서 막 깨어난 아이의 볼이 붉다 

 

선명한 저 연꽃 같은 아이들아 아이들아

 

  

* 아라 : 아라가야 땅이었던 경남 함안. 700년 전의 연씨를 출토하여 발아에 성공, 홍련을 피워내고 그 이름을 '아라홍련'이라 함.

 

 

 

계간하늘(2020년 가을호)

 

 

 

   식물은 위대한다. 우선 그 생명력에 감탄을 하고 척박한 곳 산성 땅 어디서나 자라는 식물이 부럽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왜 안 그런가. 보라 식물의 씨앗은 보도블럭, 담벼락 구멍, 지붕 위 안 가는 곳이 없고 못 가는 곳이 없다. 낭떠러지 절벽의 끝 아슬아슬한 곳에서도 그 생명력을 키운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보곤 했다. 이 지구는 동물들의 나라가 아니고 식물들의 나라라고. 식물이 없으면 온갖 곤충이 무얼 먹고 자라며 그걸 먹이로 하여 살아가는 조류 등 작은 동물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화전을 일구어도 한두 해 거르고 몇 년 만 지나면 바로 묵정밭이 돼버리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식물들은 정말로 위대하다.

 

   시는 이 위대한 한 식물의 한 씨앗을 소재로 했다. 절말 놀랄 노자가 아닌가. 십년도 아니고 백년도 까마득한데 700년이나 숨을 쉬고 있었다니...직접 이 꽃을 알현하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에서 볼 수 있었다. 함안 박물관 아라 연꽃, 다른 연꽃과 특별히 달라보이지는 않지만 시에서처럼 막 단잠에서 깨어난 아이의 볼처럼 우련 붉다.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이 700년 아라 연꽃 앞에 경배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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