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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동백의 배경 /돌아가시다

흰구름과 함께 2023. 7. 23. 10:16

동백의 배경 

 

김나연

 

 

남쪽 끝 섬에 와서야 알았네

당신이 내 배경인 줄

오동도에는 붉은 동백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목을 꺾어 뛰어내리며

화려한 꽃물을 들이고 있었네

푸른 잎사귀 사이사이 동백꽃과

지상의 동백꽃이 어우러져 섬은 불타고

바닷바람은 먼 데서 오는 봄소식을 실어 날랐네

사랑나무는 마음을 기대듯 서로 몸을 포개고 있었지

동백이 미련을 버린 자리에 윤기 나는

검푸른 잎사귀 반짝였네

 

나는 내가 나인 줄 알았는데

당신이 있어 내가 있는 줄 알겠네

동백꽃이 미련 없이 뛰어내린 건

사시사철 푸른 배경이 되어 주는

잎사귀가 있었기 때문

 

내게도 배경이 되어 주는 당신이 있어

내가 빛날 수 있음을 이제야 알겠네

 

 

 

―반년간『시에티카』(2023년 상반기호)

 

 

돌아가시다

김나연

 

 

큰길 버스에서 내려

야트막한 고갯길 모퉁이를 돌면

산자락에 안긴 새 둥지 같은 고향 마을이 있었다

 

순자네 돌담을 돌아가면 마을

뒷길이었다

 

천지분간 못하던 어릴 적엔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그 돌담길을 돌아가듯

빙 돌아간다는 말로 알았다

 

계절이 돌아와 소쩍새 울고

하얀 찔레꽃 다시 돌아와 향기를 날려도

 

산모퉁이를 돌아갔는지

돌담길을 돌아갔는지

 

한번 돌아간 이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반년간『시에티카』(2023년 상반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