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의 배경
김나연
남쪽 끝 섬에 와서야 알았네
당신이 내 배경인 줄
오동도에는 붉은 동백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목을 꺾어 뛰어내리며
화려한 꽃물을 들이고 있었네
푸른 잎사귀 사이사이 동백꽃과
지상의 동백꽃이 어우러져 섬은 불타고
바닷바람은 먼 데서 오는 봄소식을 실어 날랐네
사랑나무는 마음을 기대듯 서로 몸을 포개고 있었지
동백이 미련을 버린 자리에 윤기 나는
검푸른 잎사귀 반짝였네
나는 내가 나인 줄 알았는데
당신이 있어 내가 있는 줄 알겠네
동백꽃이 미련 없이 뛰어내린 건
사시사철 푸른 배경이 되어 주는
잎사귀가 있었기 때문
내게도 배경이 되어 주는 당신이 있어
내가 빛날 수 있음을 이제야 알겠네
―반년간『시에티카』(2023년 상반기호)
돌아가시다
김나연
큰길 버스에서 내려
야트막한 고갯길 모퉁이를 돌면
산자락에 안긴 새 둥지 같은 고향 마을이 있었다
순자네 돌담을 돌아가면 마을
뒷길이었다
천지분간 못하던 어릴 적엔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그 돌담길을 돌아가듯
빙 돌아간다는 말로 알았다
계절이 돌아와 소쩍새 울고
하얀 찔레꽃 다시 돌아와 향기를 날려도
산모퉁이를 돌아갔는지
돌담길을 돌아갔는지
한번 돌아간 이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반년간『시에티카』(2023년 상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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