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감상 손설강- 3> 정호순 / 꽃길, 꽃길

「꽃길, 꽃길」
꽃길은 꽃이 있다고
꽃길이 아니다
너와 함께 걸을 때 비로소
꽃길은 꽃길이 된다
장미(牆薇)는 담에 기대어 자라는 식물이라는 어원으로 풀이하고 있다.
위 사진도 여성이 장미에 살포시 기대어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보기만 해도 예쁘다.
장미처럼 사랑받는 꽃이 있을까.
장미를 보면 시를 쓰고, 사과를 보면 깨물라고 괴테가 언술 했듯이 장미에 대한 시 한 편 안 써 본 사람이 있을까.
정호순 님은 '서울 장미축제'에 대해서도 카페에 자세히 소개를 해놓았다.
우리는 흔히 덕담으로 '꽃길만 걸으세요'라고 한다. '흔한' 말에서 '엄한'의미를 깔끔하게 끄집어냈다.
그렇다. 행과 불행은 인간관계 문제다. 뜻이 맞지 않는 사람과 산다면 꽃이 보이겠는가.
꽃대궐에 살아도 위리안치(圍離安置)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속에 등장하는 장미 에피소드도 비슷한 의미다.
지구별에서 수천만 송이 장미를 만나지만 오히려 자기 별에 두고 온 한 송이 장미를 그리워한다.
같이 있을 때 까탈부리며 힘들게 했는데도 말이다. 이건 김춘수 시인의 '꽃'의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관계 맺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정호순 님은 묵직한 철학서를 새끼손가락 하나로 가뿐히 들어올렸다. 짧지만 긴 여운이 긴 작품이다.
물론 느끼는 사람 몫이다. 그런데 꽃길이라는 낱말이 다섯 번이나 등장한다.
같은 단어를 쓰기 보다는 같은 의미의 다른 낱말을 권하는 디카시의 이론에 벗어난 느낌도 있으나 정지용의 시 '향수'
~그곳엔 참하 잊을리요. 후렴처럼 자연스럽다.
디카시는 사진을 쓰기 때문에 초상권이 조심스럽다. 저 이미지 속 여성은 장미에 얼굴이 가려져 있고
남성은 나무에 몸 절반이 가려져 있다. 절묘한 포커스다. 저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수십 컷을 찍었을 것이다.
디카시는 쉬운 것 같지만 요소요소에 장치를 숨겨놓고 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 빵의 가치를 알듯이 아는 사람만 안다.
자기 집에 방문한 여인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려고 급히 꺾다 가시에 찔려,
종내는 사망에 이르게 된 릴케의 묘비에 시 한 구절 '순수한 모순'의 역설을 소환해본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흠이 있다는 보편적 사실에 주지하며 나에게 편협함은 없는지 반성해본다.
'꽃길'은 널려있지만 '꽃길'이 아닌 것도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이 아닐까. <손설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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