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욱국 냄새는 창문을 넘고 /박재숙
―달팽이
꿈에 본 그 녀석일까?
6일간 냉장고 야채실
아욱 담은 비닐봉지 속에서
살아남은 달팽이 한 마리
저 느린 걸음으로
얼마나 아욱 줄기를 헤맸던 것일까?
없애야지 싶다가도
텃밭 야채 걱정되어도
먹으면 얼마나 먹을까 생각에
화단에서 꽃향기 맡으며
소풍처럼 남은 생 더 살다 가라고
창문 열고 꽃기린 잎새에 놓아주었는데
장맛비 온종일 뿔을 적시고
저녁이 되어도 집 한 채 둘러메고
그 자리 떠나지 않고 있다
어디로 가다가
문득 여기까지 따라왔을까?
먼 천둥소리
아욱국 냄새는 창문을 넘고
오솔길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ㅡ시사진집『천 년쯤 견디어 비로소 눈부신』(詩와에세이,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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