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과 사진/딥틱 사진. 포토시

아욱국 냄새는 창문을 넘고 /박재숙―달팽이

흰구름과 함께 2023. 3. 27. 09:02

 

아욱국 냄새는 창문을 넘고 /박재숙

―달팽이

 

 

꿈에 본 그 녀석일까?

 

6일간 냉장고 야채실

아욱 담은 비닐봉지 속에서

살아남은 달팽이 한 마리

저 느린 걸음으로

얼마나 아욱 줄기를 헤맸던 것일까?

 

없애야지 싶다가도

텃밭 야채 걱정되어도

먹으면 얼마나 먹을까 생각에

화단에서 꽃향기 맡으며

소풍처럼 남은 생 더 살다 가라고

창문 열고 꽃기린 잎새에 놓아주었는데

 

장맛비 온종일 뿔을 적시고

저녁이 되어도 집 한 채 둘러메고

그 자리 떠나지 않고 있다

 

어디로 가다가

문득 여기까지 따라왔을까?

먼 천둥소리

아욱국 냄새는 창문을 넘고

오솔길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ㅡ시사진집『천 년쯤 견디어 비로소 눈부신』(詩와에세이,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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