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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촛불김휼

흰구름과 함께 2023. 3. 15. 08:48

목련 촛불

 

김휼

 

험한 세상, 당신을 지켜주고 싶어

겨우내 촛불 하나 빚었지요

 

마음 깊은 곳의 어둠 거둬주고 싶어

조각난 빛까지 그러모으던 열심

혹한의 시간을 꼬아 만든 심지로

당신 발등의 빛이 되어

어둠의 둘레를 밝혀 줄게요

 

 

 

ㅡ시집『말에서 멀어지는 순간』 (걷는사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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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쯤 남쪽 지방에는 목련이 피었을라나. 오늘 아침에도 바라봤는데 내가 사는 골목에 사는 목련은 아직이다. 다른 해보다 올해 이 목련에 더 자주 눈길을 주는 것은 목련이 지고 났을 때 하늘에 걸려있던 구름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카메라를 기변한 후 툭 하면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목련이 활짝 폈을 때 새털 같은 구름을 만날 수 있다면 목련과 같이 구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더 없는 행운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련은 일찍 피는 풀꽃과 나무 중에 큰 키에 속하는 식물이다. 산이나 강보다 사람하고 친해서 사람 사는 동네 골목에서 땀 냄새, 음식 냄새, 온갖 잡다한 냄새와 매연을 먹고 마시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뽐내면서 피어난다. 유럽 르네상스 시대 귀족의 부인 같다고나 할까.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을 지니고 고고한 자색과 순결의 아이콘처럼 귀티가 흐른다.

 

  꽃 중에 귀빈인 목련꽃님께서 누구를 지켜주기 위해서 혹한을 견뎌낸 심지를 꼬아서라도 어둠을 밝혀주고 싶은 것일까. 살아가면서 사랑한 사람보다 미워한 사람들이 더 많은데 미워한 사람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목련의 꽃등불을 켜드릴까. 내 마음속 꽃등불이 되어 줄 또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련 촛불을 켜드릴까.

 

  목련이여, 목련 촛불이여 어서어서 피어나라. 미운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보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따뜻하게 목련 촛불을 켜시라. <2023년 3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