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영(蟲癭)
김성신
나는 한 마리 벌레
저 단단한 씨방 속이 궁금했다
그림자는 기꺼이 버려두며
빛의 모서리는 둥글게 둥글게
바라볼 때마다 나지막이 반짝일 것
견딜 수 있냐고 묻고는
사라진 웃음을 수막새로 만들며
모질다고 낯도 참 두껍다고 말할 것
내가 깊은 그곳을 헤집은 후
푸른 저녁은 말을 걸어오곤 했다
하룻밤은 당신과 입술이 맞닿는 일
사흘 밤은 당신의 어깨를 감싸는 일
이레째, 당신의 봉분을 쌓을 수도 있겠다
사소한 일들로 벌어진 당신과의 틈새로
낯선 계절이 웅크리고 있었다
앞에서 안아도 가슴은 늘 뒤
몸 안으로 흐르는 채워지지 않는 생각을
갉을 수밖에 없는 운명
나를 저 멀리로 내려놓아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들은 죄다 길이 되고
안녕, 이라는 말 한마디
무릎으로 구겨 넣을 때마다
가뭇한 소리가 이명처럼 자박거린다
이젠, 낡은 몸을 버려야 할 때
우화를 꿈꾸는 당신의 몸을 받아들여야 할 때
생각이 마를수록 단단해지는 당신이라는 정념情念
안녕, 이라는 말 한마디
무릎으로 구겨 넣을 때마다
가뭇한 소리가 이명처럼 자박거린다
* 개다래 열매에 벌레가 들어가면 산란에 의한 자극으로 모양과 성질이 변한다. 통풍의 특효약.
ㅡ시집『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 (포지션, 2022)
20여 년 전 시를 보면서 한창 꽃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였다. 시 쓰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꽃을 찍기 시작했는데 사진을 찍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떤 꽃은 저 좀 찍어 주세요 하며 눈길을 보낸다. 바쁜 걸음에 지나쳐 갔다가도 되돌아와서 찍는다. 그렇게 이름도 모르는 꽃을 찍으면서 꽃의 이름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참나무에서 핀 붉은꽃을 만났다. 장미만큼은 화려하거나 고혹적이지는 않았지만 연꽃의 자태를 닮았다고나 할까. 은은히 풍기는 붉은 꽃 이파리가 녹색의 배경이 되어 막 무르익어가는 소녀의 미소 같아 더욱 이쁘게 보였다.
그때까지 도토리는 알아도 도토리꽃을 보지 못했기에 도토리꽃인가 싶어 사진을 찍었는데 그런데 다른 참나무에서는 혹 같은 동그란 모양만 보였지 이파리까지 예쁘게 핀 꽃은 보이질 않았다.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일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꽃이 아닌 혹벌의 집이라고 했다. 참나무 충영이라고 하는데 어찌 미물인 애벌레가 저렇게 예쁜 집을 지을 수 있는지 참으로 경이로웠다.
벌레집 하면 먼저 떠오르는 집이 있는데 바로 유리산누에나방 애벌레의 집이다.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겨울 설경에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초록색 애벌레 집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정말 대단한 조각솜씨요, 창조적인 작품이다.
충영도 시에서처럼 개달래 충영도 있고 바나나처럼 모양을 가진 때죽나무 충영도 있고 오배자라고도 불리는 울퉁불퉁 못생긴 붉나무 충영도 있다. 이렇게 충영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시인은 개다래 충영에서 인지적 교감을 했나 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좁은 그 곳이 아늑할까 포근할까. 안녕이라는 말이 여운을 남기는데 다음 산행길에 다시 충영을 만나면 나도 그들의 안부를 물어봐야겠다. 그 속에서 잘 있지, 우화등선하기를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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