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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이형기 /조지훈

흰구름과 함께 2024. 6. 19. 07:32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적막강산』. 모음출판사. 1963)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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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김희보 편저『한국의 名詩』(종로서적,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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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2


조지훈

 

 

피었다 몰래 지는
고운 마음을


흰무리 쓴 촛불이
홀로 아노니


꽃 지는 소리
하도 가늘어


귀기울여 듣기에도
조심스러라


두견(杜鵑)이도 한목청
울고 지친 밤


나 혼자만 잠들기
못내 설워라

 

 
-(『청록집』.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