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근무
엄재국
진달래 지천으로 피는 북향의 산비탈
꽃잎이 공중에 매장되고 있다
지하의 한 칸 계단을 내려서고 있는, 친구의 하관식
병반의 광부가 막장의 임무를 교대하고 있다
퇴적된 목숨들이 겹겹이 일어서는, 캄캄한 공중의 광맥들
우수수 쏟아지는 분홍빛 석탄들
누군가,
공중에 꽃을 매장하고 있다
-반경환 명시감상1.2
엄재국 시인
경북 문경 출생
200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정비공장 장미 꽃>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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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국 시인의 출생지를 보니까 경북 문경으로 되어있다. 지금은 폐광이 되었거나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지만 문경은 탄광이 있는 도시로서 강원도 사북 동원탄좌와 태백의 장성광업소와 함께 한때 많은 석탄이 생산되었던 곳이었다. 3연 첫구에 '병반'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탄광촌 용어로서 사전에는 등록이 되어있지 않는 단어다.
광산은 주야로 삼교대 근무를 하는데 갑반, 을반, 병반이 있다. 갑반은 보통 일반회사에서 근무를 하는 것처럼 아침 7시 30분 교대하여 저녁에 퇴근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을반은 오후 3시 30분 교대하여 밤 12시 퇴근을 하고 병반은 밤 11시 30분에 교대하여 아침까지 근무하는 것을 말한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살 수 없었다는 광산촌에 개도 만원짜리 물고 다닌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자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신천지와 금을 찾아 모여들었던 사람들처럼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광산촌으로 몰려들었다. 국가는 이들을 에너지 수급정책의 일등공로자로 산업전사로 치켜세웠지만 에너지정책이 기름과 가스로 대체되면서 지금은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 시에서 나오는 죽은 친구가 광부인지 아닌지, 또는 광산사고로 죽었는지 다른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친구의 하관식을 탄광촌 광부의 작업현장의 특징을 비유하여 지상과 지하의 갈림길을 놓고 있다. 강원도의 광산촌은 보통 표고 600미터이상의 높은 고지에 위치해 있는데 광부가 일하는 막장은 '케이지' 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보다 지하로 훨씬 더 깊이 내려가야 한다.
탄광촌의 냇가는 검정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면 저탄장의 탄가루들이 널어놓은 빨래 뿐 아니라 진달래의 꽃잎에도 내려앉는다. 그래서 광산촌의 풍경은 목탄그림을 닮아있는데 검은 색이 일맥상통하는 죽음과 분홍빛 진달래의 꽃잎이 저탄장의 석탄처럼 분분히 낙화하여 아련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2008년 19월 13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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