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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서 /이사람

흰구름과 함께 2024. 1. 11. 09:20

돌아오는 길에서

 

이사람

 

 

너에게로 가는 길은

풀벌레 소리도 다정한 잔소리로 들렸지

 

빈 무밭에 버려진 무청은

잃어버린 이름표처럼 쓸쓸했네

 

눈을 감고 걸으면

밤 뻐꾸기 소리에서 살냄새가 났지

 

서로 쥐지 못하고 스치기만 했던,

손등과 손등의 기억이

시퍼런 달빛에 들켜 숨이 막힐 지경이었네

 

건너편 제재소 불빛에

두 입술은

들숨과 날숨의 속내를 자주 들키고 했었지

 

혼자 돌아오는 밤길은

끊어진 폐 노선처럼 불편한 위안임을

진작부터 예감했었지만

 

가지러 온 것이 아니라고,

다시 두고 가려 했다고 말하고 싶었지

 

저녁 그림자가 짙게 누울수록

혹시나 하는 마음은

긴 가뭄 뒤의 당도처럼 짙어져만 갔네

 

 

 

ㅡ웹진《시산맥》(2023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