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장석주
귀 떨어진 개다리 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먹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 놓고
잡고 싶지 않은 손을 잡고
정작 해야 할 말을 숨겼으며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했으며
잡고 싶은 손을 잡지 못했다.
나는 왜 밥을 먹는가, 오늘
다시 생각하며 내가 마땅히
했어야 할 양심의 말들을
파기하고 또는 목구멍 속에 가두고
그 대가로 받았던 몇 번의 끼니에 대하여
부끄러워 한다.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아아
나는 가롯 유다가 되지 않기 위하여
기도한다. 밥 한 그릇에
나를 팔지 않기 위하여.
―시집『어둠에 바친다』(청하, 1985)
여기 밥이 있다. 아프고 고단한 밥이 있고 슬프고 비굴한 밥이 있다. 숭고한 밥이 있고 노동의 밥이 있다. 눈물의 밥이 있고. 감동의 밥이 있다. 이런 밥, 저런 밥 비빔밥 짬뽕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때로는 고개를 숙여야 하고 때로는 더 깊이 허리까지 굽혀야 한다는 것을. 밥을 위한 몸은 고단하고 영혼은 늘 고달프다는 것을.
신분이 고귀한 왕후재상도 밥을 먹어야 하고 거지도 하층계급 천민도 다 같이 밥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한다. 그런데 밥을 빌어먹는 방식이 다 다르다. 이 한 그릇의 밥을 빌기 위해 가고 싶은 않은 곳을 가야하고, 하고 싶지 않는 것을 해야한다. 다 밥을 먹기 위해서인데 양심의 말을 목구멍에 가두고 사는 것이 어찌 부끄러움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정말 부끄러울 때도 있다. 그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밥 한 숟가락 입에 넣어본다. 무위도식하며 눈칫밥 먹는 백수처럼 입맛이 까칠하다. (2008년 10월 24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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