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의 선택
―선녀의 선택-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 을 고쳐쓰다
유안진
그지없이 순박하다고 믿었던 남편이 날개옷을 내놓자 기가 막혔지요. 이런 거짓으로도 일심동체 부부였다니요? 내 남편이 목욕하는 선녀들을 훔쳐 본 치한癡漢이었다니요? 겉잡을 수 없는 경멸감과 배신감에, 주저 없이 날개옷을 떨쳐입고 두 아이를 안고 날개 쳐 올랐지요. 티끌만치도 미안하긴 커녕 다만 억울하고 분할뿐이었지요.
오오 그리운 내 고향! 가슴도 머리도 쿵쾅거렸지요. 큰애가 아빤 왜 안 오느냐고 하자, 비로소 정신이 났지요. 얘들이 제 아빠를 그리워한다면? 부모-자식간의 천륜天倫을 갈라놓을 권리가 내게 있는가? 아쉬우면 취하고, 소용없어지면 버려도 되는 게 남편이란 존잰가? 우리 셋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까? 옥황상제님도 잘했다고 하실까? 남편의 처지였다면 나도 그랬을까? 애들의 젖은 눈을 보자, 탱천했던 분노도 힘이 빠지며 마구 흔들렸어요.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에다 날개옷을 던졌지요. 불기가 옮겨 붙어 활활 타는 날개옷을 바라보니 뜻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분명 나는 웃고 있었지요. 내 하늘은 이 오두막이야! 우리 가족이 함께 사는 이 가정이, 가난하고 초라해도 우리의 하늘나라 천국이야! 무슨 장난을 치는지 앞마당 쪽에서 까르르 두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지요.
―시집『다보탑을 줍다』(창비, 2004)
흰 거짓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치의 병이 걸렸을 때 충격을 받을까봐 가족이 환자에게 숨기는 악의적인 아닌 선의의 거짓말을 말하는 것이지만 살다보면 부부사이에도 숨겨야할 거짓말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시에서는 다행히도 마음을 돌려서 돌아왔지만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는 아이들이었지요. 인생을 살면서 실제로 아이들 때문에 많이도 싸우지만 아이들이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어서 헤어지지 않고 살다 살다보니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이 되고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는 이순이 되고 맙니다.
이 시는 제목에서 시사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이면 다 아는 전래동화 '선녀와 나뭇꾼'을 패러디 한 작품인데 원본보다 더 짠한 감동이 있습니다. 선녀를 우리나라 보통의 어머니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지요. '뜻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분명 나는 웃고 있었고, 내 하늘은 이 오두막이 우리집' 이라는 구절은 도덕보다 우선하는 것이 천륜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에서 행복을 찾고 아이들이 행복하면 고생스러워도 힘들어도 모두 다 용서가 되는 것이 우리들의 어머니 마음이지요.
(2008년 10월 21일)
'나의 글과 사진 > 시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자꽃 /이재무 (0) | 2023.03.03 |
---|---|
핸드폰 /한혜영 (0) | 2023.03.03 |
강이 날아오른다 /손택수 (0) | 2023.02.28 |
그리운 연어 /박이화 (0) | 2023.02.28 |
각축 /문인수 (0) | 2023.02.28 |